“정부의 연구개발 과제 중 일부는 이미 끝났지만 이후에 자체 투자금을 투입해 설비투자를 늘렸습니다. 독일 등 해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입니다”
7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한국행 수출 규제 조치가 해제 수순에 들어가면서 관련 업계도 신속하게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2019년 7월 일본이 일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이후 업계와 정부가 3년 여간 공 들여온 소재 국산화 노력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해제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부장 기업들은 일본발 공급망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만큼 기술독립을 위한 연구개발(R&D)을 이어갈 계획이다.
산업용 필름 등을 제조하는 삼영화학(003720) 관계자는 “전기수소차 등에 쓰이는 초극초박막 캐파시터 필름 개발을 멈출 계획이 전혀 없다”며 “한일 관계 해빙 무드가 사업 확장 측면에서는 오히려 일본 수출길이 열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불화수소 등 국산화에 성공한 분야는 국내 업체들이 이미 시장 점유율을 상당히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확보했다”며 “최종 고객인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가 다시 일본 기업 제품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협력사들도 다시 돌아오는 일본 기업들에 맞서기 위해 오히려 R&D 투자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9년 7월 일본이 ‘3대 품목(고순도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이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시도해 대일 수입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수출 규제 조치 이전인 2018년만 해도 41.9%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7.7%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수입 비중은 93.2%에서 77.4%로, 디스플레이 소재로 쓰이는 플르오린 폴리이미드 비중은 44.7%에서 33.%로 감소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해도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한 번 깨진 이상 수입선 다변화·소재 국산화 시도는 지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번 불거진 정치 리스크와 신뢰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며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소재 등을 공동개발하고 정부가 ‘소부장' 개발 기업을 지원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처캐피탈(VC) 업계도 반도체 기술 독립에 나선 소부장 기업들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아날로그반도체 설계 기업인 관악아날로그는 최근 60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아날로그반도체는 빛과 소리·압력·온도 등 각종 신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로 전기차와 스마트폰 등에 사용된다. 최근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 메티스엑스도 8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메티스엑스 투자에는 IMM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원익투자파트너스·토니인베스트먼트·SBI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유수의 VC가 대거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지원한 자금은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서 “정부 지원금을 계기로 자체 투자도 확대한 기업들은 이제부터 일본 기업들과 제대로 된 경쟁을 벌여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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