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자의 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 상품을 추천해주는 핀테크 기업 뱅크샐러드는 올 2월 전체 인력의 10%를 감축하는 구조 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 기업가치 6000억 원을 인정받고 1350억 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 유치에 성공한 지 8개월 만이다. 회사 관계자는 “연초에 회사의 전략 방향을 정하면서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했다”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투자 시장이 위축돼 자금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가 3년 전 수준으로 후퇴하면서 외부 투자금으로 제품·서비스 개발을 해온 업계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특히 투자를 결정할 때 아이디어와 인력 구성 등으로 소액을 투자하는 초기 단계의 시드(seed·초기 투자)보다 사업 구조와 매출·영업이익 등 실적을 중심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후기 단계 투자가 말라붙으면서 비교적 규모가 큰 스타트업들이 먼저 위기를 맞고 있다.
31일 스타트업 투자 정보 제공 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창업 후 거친 투자 단계가 많을수록 올 1분기 투자액이 더 많이 감소했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자금 유치 단계인 시드 투자액은 올 1분기 767억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62.4% 감소했으며 시드 투자 이후 받게 되는 첫 번째 투자를 의미하는 시리즈A 투자액은 올 1분기 2478억 원으로 같은 기간 79.2% 줄었다. 시드 투자 이후 두 번째 투자인 시리즈B 투자액은 올 1분기 200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7%, 세 번째 투자인 시리즈C의 경우 1674억 원으로 무려 91.3%나 감소했다. 투자 규모가 작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그나마 이어지고 있지만 시리즈B·C 등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의 투자는 그야말로 씨가 마른 것이다.
초기 기업도 문제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 커져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앞둔 기업들의 자금난은 더 심각하다. 한때 차기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 0순위로 꼽혔던 애그테크(농업기술) 기업 그린랩스는 현재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희망퇴직으로도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올 4월부터는 정리해고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린랩스는 지난해 1월 8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적자를 견디지 못하는 수준까지 온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된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지난해 말부터 구조 조정과 일부 사업 매각에 돌입했다. 2014년 설립 이후 도티·유병재 등 스타 유튜버가 합류하며 국내 멀티채널네트워크(MCN)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투자 혹한기를 피해가지 못한 탓이다. 같은 시기에 예비 유니콘이 된 메쉬코리아는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했지만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해 지난해 11월 25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절차의 한 종류인 ‘자율적 구조 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을 신청했다. 이후 hy(한국야쿠르트)가 인수에 나서 급한 불을 껐으나 한때 1조 원이 목표였던 기업가치는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투자 집행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기업들의 경우 IPO나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아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시드 투자의 경우 투자 회수 시기가 일반적으로 5~8년이어서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 집행을 할 수 있지만 당장 2~3년 뒤 IPO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시리즈C 등의 후속 투자는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은 “현재 거시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단기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후속 단계가 초기 단계보다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 1분기 시드 투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을 정도로 급감해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로 초기 투자를 집행하는 한 VC 관계자는 “투자해놓은 기업들 대부분이 추가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신규 기업에 대한 투자는 거의 중단된 상태”라며 “창업 생태계가 당분간 큰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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