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4월 전 전기·가스요금 인상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방침을 뒤집고 발표 시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국민 부담 가중을 이유로 추가 논의를 통한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이 임박한 데다 내년 4월 총선 등을 감안하면 ‘요금 인상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경영난도 한층 심각해져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정은 31일 국회에서 전기·가스요금 조정 방안을 협의했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29일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사실상 요금 동결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4월 1일부터 적용되는 전기·가스요금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국민의힘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에너지 공기업 재무 악화 및 안정적 에너지 공급 기반 위협 등으로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면서도 “국민 부담 최소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추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정 보류’라고 했지만 사실상 ‘동결’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를 마친 후 브리핑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 추이와 인상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 등 여론 수렴을 좀 더 진행해 추후 (인상 폭과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결정할지는 지금 단계에서 바로 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 공기업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32조 603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전은 올 1분기에도 5조 30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가스공사도 올 1분기에 미수금이 1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빚을 내 손실을 메우는 한전과 가스공사는 비핵심 자산 매각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한전과 그 자회사에서 외유성 해외 출장을 일삼아온 임원이 적발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에너지 가격 인상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에 한전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자구책을 먼저 강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 아닌가”라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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