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연기하며 한국전력(015760)의 적자 규모가 확대되자 한전채 발행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일단 지난해 하반기와 달리 채권 시장 안정과 투자 수요 증가가 맞물려 한전채 발행 금리는 4% 안팎에서 잠잠하다. 다만 한전채 발행이 계속 증가하고, 시장 경색 국면이 다시 찾아올 경우 한전채가 시장의 ‘블랙홀’이 될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한전은 전날 5300억 원의 채권 발행을 위한 입찰을 진행해 1조 230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2년물에 7900억 원, 3년물에 4400억 원의 자금이 몰려 각각 2700억 원, 2600억 원씩 발행을 확정했다.
발행금리는 2년물 3.99%, 3년물 4%로 결정됐다. 전날 같은 만기의 민평 금리(채권평가사들이 매긴 기업의 고유 금리)와 비교하면 2년물은 10.8bp(1bp는 0.01%), 3년물은 11.1bp 높았다.
최근 한전채 발행금리는 4%대 안팎에서 ‘오버(over) 발행’을 지속하고 있다. 3년물 기준 지난달 30일 발행 금리는 3.99%였는데 동일 만기 민평 금리 대비 21.8bp 높았다. 지난달 22일 3년물 발행 금리는 4%로 역시 민평 금리 대비 20.7bp 높았다. 시장이 평가하는 한전채 가격이 비싸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연초 한전채 발행량이 많아지면서 기관 투자가들의 조달 부담 역시 늘어난 탓이다.
한전은 올 1분기 기준 8조 100억 원어치 회사채를 찍어냈다. 이는 지난해 3월 말 발행(6조 8700억 원)을 넘어선 규모다. 전날 발행액까지 합치면 총 8조 5400억 원을 발행했다. 지난달 말까지 발행 잔액도 68조 2700억 원으로 전년 동기(39조 6200억 원) 대비 약 72% 늘었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수십조 원 규모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전채 발행을 더욱 늘릴 경우, 한전이 일반 회사채 수요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작년 하반기 국가가 보증하는 한전채가 6% 가까운 고금리로 발행되자 시장 전반의 가산금리가 잇따라 급등한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전기 요금을 동결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 압력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한전발 가산금리 확대 사태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오버 발행은 올 초 한전채 발행량이 많았기 때문” 이라며 “하반기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한전채 발행량은 줄어들게 돼 발행 금리가 4%보다 더 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한전채 발행 총량이 과도하게 특정 시점에 쏠려 시장을 흔들지 않도록 분산 발행하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정부·여당은 2분기 전기 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하고 사실상 동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당정 협의회 후 기자들과 만나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 면서도 “인상 시기와 폭에 대해서는 산업자원부가 제시한 복수의 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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