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주도주가 2차전지에서 결국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의 시간도 돌아왔다. 삼성전자가 쏘아 올린 반도체 감산에 외국인투자가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9조 원 넘는 폭풍 매수세를 보이며 투자 흐름을 바꿔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 업계는 삼성전자가 7만 원 선을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경기 침체 우려가 만만치 않은 만큼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권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날 2200원(3.32%) 급등한 6만 8400원에 장을 마감하며 1년 만에 최고치(6만 8800원)에 근접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3% 이상 오른 것은 지난달 7일(4.33%) 이후 28거래일 만이다. 지난달 7일 삼성전자는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메모리반도체 감산 계획을 피력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반도체 관련 종목들은 이날 일제히 급등했다. SK하이닉스(000660)는 3700원(3.95%) 오른 9만 7300원을 기록했다. 한미반도체(042700)(21.5%)와 DB하이텍(000990)(4.6%)을 비롯해 반도체 장비 업체인 원익IPS(240810)(9.8%), 피에스케이(319660)(9.2%), 이오테크닉스(039030)(9.1%), 반도체 소재 업체인 동진쎄미켐(005290)(14.2%), 솔브레인(357780)(7.4%) 한솔케미칼(014680)(5.3%) 등도 급등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종의 호조로 코스피도 전날보다 22.3포인트(0.89%) 오른 2537.79에 거래를 마감했다.
반도체주 강세는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강세를 보인 것이 배경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긍정적 전망, 일본의 마이크론 보조금 지급 등 호재에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강세를 보이며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 반도체주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2차전지에서 반도체로 주도주가 교체되면서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외국인은 2차전지에서 반도체로 완전히 갈아탄 모습이다. 외인은 이날에만 삼성전자를 5293억 원어치(778만 주) 순매수했다. 이날 코스피 전체 외국인 순매수 규모(5580억 원)에 맞먹는다. 이날 외국인 매수액은 감산 발표일(8811억 원) 이후 가장 많았다.
외국인은 올 들어 삼성전자를 9조 1355억 원 순매수했는데 전체 매수액의 45%(4조1144억 원)를 감산 발표일 이후 29영업일 동안 매집했다. 같은 기간 2차전지 관련주인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1조 9475억 원)와 에코프로(086520)(8904억 원), 포스코퓨처엠(003670)(3095억 원), LG화학(051910)(2400억 원), 에코프로비엠(247540)(2146억 원) 등은 순매도를 기록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가 쏘아 올린 감산 신호탄이 반도체 업황 자체를 바꿨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혜택을 보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집중 매집은 한국 증시가 세계 주요국 지수 대비 약세를 보인 것도 이유다. 일본 닛케이는 이미 3만 선을 돌파했고 독일의 DAX지수도 고공 행진 중이다. 하지만 반도체의 증시 영향력이 큰 한국과 대만 지수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삼성전자가 1분기 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한 후 오히려 상승 여력이 크다고 평가돼 순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버틸 수 있는 종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향후 주가를 둘러싼 국내 증권사들(22곳)의 목표 주가 컨센서스는 8만 1727원이다. 최고 목표가는 9만 원(유안타증권), 최저는 7만 5000원(다올투자증권)이다. 이날 종가와 비교할 때 19%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 SK하이닉스의 컨센서스는 11만 3955원으로 17% 정도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편 위원은 “‘7만전자’는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기 급등을 노린 투자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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