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업계가 위기에 처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신규 계약은 주는데 저금리 장기화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본 비율도 위태롭다. 금융 당국이 도입을 준비 중인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K-ICS)이 50%를 밑도는 업체도 수두룩하다. 시장에는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은 더디다. 벼랑 끝에 선 보험사의 상황을 회사별로 분석해본다.
1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소속 동양생명·ABL생명보험지부 노조원들은 “중국 다자그룹과 우리금융지주는 동양·ABL생명 직원들의 고용 보장과 보상 방안을 즉각 제시하라”며 “우리금융지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무시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회사 노조는 현재 우리금융으로의 인수에 따른 보상으로 기본급 1200%의 위로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기철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중국 다자그룹은 10년간 회사를 성장시킨 직원들의 고용 보장과 합당한 보상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금융위원회가 이번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한 채 인수를 승인한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의 동양생명·ABL생명 인수 승인이 늦어지면서 두 회사의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다. 당국은 이르면 이달 금융위에서 조건부 승인을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지난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이후 8개월이 흘렀다. 양사 노조는 당국에 빠른 승인을 요구하면서도 과도한 위로금과 고용 보장을 내세우고 있어 우리금융의 인수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계에 따르면 동양생명의 지난해 말 현재 지급여력비율은 155.7%로 금융 당국의 규제 비율인 150%에 바짝 다가섰다. 2023년 말 193.4%와 비교하면 37.7%포인트나 빠졌다. 자본확충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금융감독원의 정기 검사를 전후로 인수 작업이 늦어졌다. 우리금융은 해당 검사에서 경영실태평가 3등급을 받아 원칙적으로는 자회사 편입승인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금융위가 조건부로 승인을 해줘야 한다.
동양생명의 경우 매각설이 불거지면서 전반적인 영업력이 약해지고 있다. 2022년 보험 신계약 규모는 9조 8462억 원이었지만 2023년 7조 3784억 원, 지난해에는 7조 5168억 원 수준을 보였다. 보유계약은 △2022년 90조 6149억 원 △2023년 88조 122억 원 △2024년 86조 8958억 원 등으로 내림세다.
ABL생명도 비슷하다. ABL생명의 지난해 말 기준 지급여력비율 역시 153.68%로 당국의 가이드라인인 150%에 근접해 있다. 1년 새 32.28%포인트나 하락했다.
ABL생명은 단체 보유계약이 크게 줄고 있다. 상품 판매가 중단되면서 2022년 114만 861건에 달했던 단체 보유계약은 2023년 56만 1820건을 거쳐 지난해 1045건까지 급감했다.
시장에서는 두 보험사의 재투자와 영업망 재구축이 절실하다는 얘기가 많다. 문제는 노조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매도자가 일반적으로 매각 차익을 보면 임직원들에게 위로금을 주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오렌지라이프가 신한금융그룹에 인수될 당시 평균 기본급 4개월의 위로급이 지급됐다. 하지만 동양·ABL생명 사례는 다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다자그룹은 사실상 산 가격에 되파는 상황이라 차액이 없다”며 “위로금을 생돈을 내서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최악의 경우 MG손보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MG손보는 노조 몽니에 메리츠화재로의 인수 작업이 종료됐다. A은행이 인수에 관심이 있지만 지금은 보유계약의 강제 이전이 우선 추진되고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와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며 “시간을 더 끌면 회사의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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