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지역 슈퍼마켓(지역마트) 중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유통 업태는 무엇일까.
대부분 각종 국·외산 식품부터 생활용품까지 ‘없는 게 없는’ 대형마트나 전국 방방곡곡 들어서 있는 편의점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답은 의외로 지역마트다. 통계청 ‘소매업태별 판매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각지 지역마트 매출액은 64조 7381억 원으로 대형마트(34조 7739억 원), 백화점(37조 7683억), 편의점(31조 1947억)을 크게 앞선다. 이커머스 시장 최강자 쿠팡의 매출액은 지난해 26조 5917억 원. 모든 게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손가락으로 굴러갈 것 같은 시대에도 오프라인 경제 생태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성준경 대표가 2019년 설립한 리테일앤인사이트는 거대한 지역마트 경제 생태계를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다. 전국에는 약 4만 개의 지역마트가 있는데 리테일앤인사이트는 지역마트 퀵커머스(빠른 배송) 플랫폼 ‘토마토’를 기반으로 서비스 출시 약 1년 반 만에 이 중 3800개 마트와 제휴를 맺었다. 회원 가입자 수는 누적 기준 50만 명에 달하며 이는 모두 마케팅이나 홍보 활동 없이 이뤄낸 성과다. 퀵커머스 시장에는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내놓은 ‘B마트’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리테일앤인사이트의 토마토는 어떻게 이 시장에서 생존하는 것을 넘어 성장할 수 있었을까.
‘상어를 이기는 청어 때’ 전략
퀵커머스는 주문 후 상품이 배송되는 시간을 1시간 내외로 줄인 배송 서비스를 일컫는다. 요리할 때 부족한 재료를 빠르게 받아보거나 급히 필요한 생활용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퀵커머스는 쿠팡 등 강자가 존재하는 이커머스 시장으로부터 명확히 독립된 영역을 갖는다. 2018년 11월 출시된 우아한형제들의 B마트는 도심 유휴 공간에 일반 물류 센터보다 크기가 작은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를 구축한 뒤 콜드체인 물류를 통해 상품을 빠르게 배송한다. 전국 각지 지역마트와는 제휴하지 않되 자체적인 물류 센터·시스템을 갖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리테일엔인사이트의 토마토는 전국 지역마트와의 제휴를 통해 퀵커머스 시장을 공략하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전국 각지 있는 약 4만 개의 지역마트는 토마토 출시 이전부터 소형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통한 자체적인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 소비자는 30대~50대 주부인데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거주지까지 직접 옮기기 어려워서다. 토마토는 각 지역 마트와의 긴밀한 밀착을 통해 이들이 이미 구축해놓은 물류 시스템과 다양한 상품군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성 대표는 이를 두고 “상어 때를 이기는 청어 때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지역마트와의 제휴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각 마트가 평균적으로 보유한 약 3만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을 유통할 수 있고, 물류 시설 구축·운영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한 장점이다. 반면 제휴하고 있는 가맹점들로부터 균일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고 이로 인한 소비자 컴플레인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있다. 지역마트가 감당할 수 있는 물류량이 한정적인 만큼 자칫 주문이 폭주하게 되면 배송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토마토는 가맹점 중심의 사업 구조가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쉬웠던 부분은 배송 시스템의 안정화다. 각 지점 물류 시스템을 초과하는 주문량이 몰릴 경우를 대비해 토마토는 전국적인 배달 대행 서비스 ‘바로고’와 ‘부릉’과 제휴를 했다. 주문이 몰릴 때 각 마트는 이들 배당 대행 업체를 활용해 배송을 할 수 있다. 성 대표는 “퀵커머스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는 배달 대행 업체 업무량이 많은 식사 시간대와는 달라 주문량 과부하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지역마트 고도화 통한 서비스 안정화
서비스 균일화를 위해서는 각 마트에 시스템 경영을 도입시켜 안정적인 유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전략을 택했다. 토마토 서비스는 단순한 유통 중개 플랫폼이 아닌 각 마트의 매장 자원관리(ERP)·공급망 관리(SCM)·매출액 등을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를 통해 전산화하고 시스템화시키는 지역마트 경제 생태계 통합 솔루션이다. 성 대표는 “각 지역마트는 수십 년 동안 경영을 이어가면서 체득한 노하우가 있었지만 각종 재고 관리나 매출, 인력, 외상 관리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온라인으로 하는 것에 대한 수요도 있었다”며 “이 지점에 집중해 토마토 서비스 안정화를 이뤄내려 했다”고 말했다.
이에 토마토는 설립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전국에 있는 지역마트 4만 곳의 10분에 1에 달하는 3800여 곳과 제휴를 맺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출액은 2021년 183억 원에서 지난해 305억 원으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서비스가 안정화돼 있지 않았다면 이 같이 빠르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 대표는 “올해 말 즈음 도서산간 지역 등 전국 어디에서나 커머스를 할 수 있는 완벽한 기반이 준비되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 사업을 키울 예정”이라며 “시장 규모가 60조 원을 넘는 지역마트 생태계를 기반으로 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토마토는 ‘배민’을 상대할 수 있나
한펀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은 좀처럼 신규 진입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메타를 모기업으로 둔 페이스북은 2000년 대부터, 국내 카카오톡은 2010년대부터, 이외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은 최소 수 년 전부터 시장을 지배해왔다. 퀵커머스 시장은 아직 태동 단계라고 볼 수 있으나 플랫폼 대기업 또는 유통 대기업이 추후 진출한다면 신규 기업의 생존이나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 리테일앤인사이트의 목표는 국내 지역마트 4만 곳 중 2만 곳을 가맹점으로 확보하는 것. 이는 가능한 목표일까.
이는 결국 ‘리테일앤인사이트 사업 모델(BM)에 진입 장벽이 존재하는가’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에 성 대표는 “지역마트 생태계의 특성상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진출해 단기간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토마토 서비스의 핵심은 유통 앱이 아닌 지역마트 관리자용 자원관리(ERP)·공급망 관리(SCM)·고객 관계 관리(CRM) 시스템인데 이는 단기간에 개발하기 쉽기 않다"며 “신규 진입자가 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는 동안 토마토는 지역마트 기반 퀵커머스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성 대표는 리테일앤인사이트의 모기업이자 이마트·현대백화점·CJ프레시원·삼성웰스토리·이랜드그룹·스타벅스 등에 유통 전산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유통 전산화 관련 전문 기업 비즈니스콜렉티브를 앞서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콜렉티브는 이마트에서 사용하는 상품관리시스템을 설계했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영업 관리 시스템 개발 또한 맡았다. 성 대표에 따르면 “지역마트 상품을 배송하려면 각 마트 ERP·SCM·CRM 등을 먼저 시스템화 해야 하는데 이는 대기업의 규격화된 유통 체계를 고도화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역마트는 지역 내 식당이 상품을 구입할 때는 특별 할인을 해주고, 고객과 외상 거래를 하기도 하며, 약 3만 종의 상품 가격이 재고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등 각종 변수가 많다. 이를 실시간으로 전산망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성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비즈니스콜렉티브에서 대기업 유통·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고도화할 때는 1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는데 토마토 시스템 구축에는 3년 가량의 기간이 소요됐다”며 “지역마트와의 제휴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은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거대한 자본과 뛰어난 인력을 가진 대기업을 상대로도 리테일앤인사이트가 그동안 쌓은 업계 내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속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성 대표는 “대기업 유통 전산화 설계·개발·고도화를 수행하는 기업을 경험한 바탕으로 봤을 때 대기업이 지역마트용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오랜 기간 동안 리테일앤인사이트는 시장 지배력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리테일앤인사이트가 이미 확보한 유통 전산 전문가와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성장은 이제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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