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차세대반도체융합연구소. 방진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노란빛이 도는 포토룸에서 6인치 크기의 반도체 웨이퍼(기판)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집어들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600㎚(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두께였지만 학부 수업에서 직접 설계한 회로가 실물로 새겨졌다는 사실 때문인지 뿌듯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축소미세노광장비·중전류형이온주입장비 등 집적회로(IC·칩) 제조 공정 150단계를 먼저 거친 다른 학생들도 자신들의 완성품을 들여다보느라 주사전자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초학부 3학년 최준식(24) 씨는 “학부생이 공정을 직접 실습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학교에 환경이 갖춰져 있어 익숙하게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DGIST, 정부·기업 손잡고 인재 허브로=DGIST는 전용면적 4431㎡(1340평), 장비 216대, 지난해 연간 이용 건수 2만 번 이상인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 반도체 팹(제조공정시설)을 보유했다. 외부 산학연은 물론 마이스터고 같은 고등학생들도 졸업 후 산업 현장에 투입되기 전 실습 경험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문호가 열려 있다. 올해는 126명이 차세대반도체융합연구소에서 실습 경험을 쌓게 될 예정이다. 이명재 DGIST 차세대반도체융합연구소장은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학생들에게 설계를 넘어 제조·분석까지 아우르는 실무 교육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며 “팹을 중심으로 인력양성 기능을 지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DGIST는 이를 위해 우선 올 하반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마이칩’ 사업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서울대 등과 공동 참여한다. 기존 팹처럼 기관들의 인프라를 빌려 학생들이 직접 반도체 칩을 제작하는 실습 프로그램으로 매년 최대 1000명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DGIST는 정부 예산 127억여 원을 지원받아 관련 인프라를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DGIST는 반도체 중에서도 센서 전문가 육성에 집중한다. DGIST 관계자는 “대구·구미 산단의 제조 기업을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필요한 센서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 체질 전환시키려는 정부·지자체의 수요에 맞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DGIST는 지난해 초 센서 전문 연구기관 ‘센소리움연구소’를 신설한 데 이어 2025년 준공 목표로 지역 공동 팹인 ‘대구형 반도체 팹(D-FAB·디팹)’ 구축도 진행하고 있다. 또 최근 삼성전자와 계약해 채용을 보장하는 학·석사 통합 ‘반도체공학과’를 내년 신설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팹 인프라·센서 반도체 전략과 연계해 운영된다.
◇계약정원제·신기술R&D…15만 양성 전략 다각도 이행=과기정통부는 DGIST를 포함한 여러 산하기관을 통해 반도체 교육 지원을 확대해 윤석열 정부의 초격차 전략에 보다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한 바 있다. 또 반도체 산업이 연평균 6.2% 성장하고 인력 수요도 5.6%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해 2031년까지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 명을 길러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여러 관계 부처 가운데 과기정통부는 특히 고급 인재양성이 필수라 보고 해당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4대 과학기술원의 반도체 석·박사 인력을 기존 2배 이상인 연간 500여 명으로 늘리고 챗GPT 출시로 중요해진 인공지능(AI)반도체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KAIST 등 3개 대학에 AI반도체 대학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외에도 계약학과를 확대하는 한편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전공 모집 정원을 한시적으로 추가하는 계약정원제를 올 하반기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국가반도체연구실(NSL), 시스템반도체 융합전문인력양성센터·대학ICT연구지원센터 등 반도체 산학 협력 연구기관도 늘린다.
과기정통부는 차세대 반도체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나오도록 관련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신경망처리장치(NPU)·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 AI반도체 R&D를 지원하는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개발’과 ‘PIM반도체 개발’ 사업, AI반도체를 국산화해 데이터센터·클라우드·AI 서비스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키우는 ‘K클라우드 프로젝트’, 10년 내 새로운 반도체 소자 등 원천 기술 45종을 확보하는 ‘반도체 미래 기술 로드맵’ 등이 대표적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인재양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보다 효율적으로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국과 차별화된 방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