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명동·홍대 점포 70%가 '문열고 에어컨'…에너지 빈국의 민낯

[에너지 과소비 이제는 바꾸자]<1> 값싼 전기료의 그림자

韓 에너지자급률 0.19% 불과한데

전력소비량은 中 등 이어 세계 7위

한전 밑지고 전기 파는 구조 고착화

다소비 사업장 절감률 1.18% 그쳐

효율 높이고 고부가산업 육성해야

때 이른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이 문을 활짝 개방한 채 영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지난달 25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한 숯불 구이집. 폴딩도어 형태의 양쪽 창문을 활짝 연 채 에어컨을 켜놓고 영업에 한창이었다. 냉기가 창을 통해 흘러나와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 매장의 주인은 “때 이른 무더위에 어쩔 수 없이 예년보다 일찍 냉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주섬주섬 외투를 꺼내 입을 정도로 내부 공기는 싸늘했지만 에어컨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에너지 수요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빈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 에너지공단이 지난달 20~22일 전국 26개 주요 상권 및 4개 대형 아웃렛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 5298개 매장 중 12%인 634개가 개문냉방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명동·홍대)이 제일 심각했다. 문 열고 냉방을 하는 매장 비중이 69%나 됐다. 이어 충북(터미널·성안길, 38%), 대구(동성로·계명대, 26%), 대전(갤러리아·둔산동, 17%) 등의 순이었다. 개문냉방은 문을 닫았을 때에 비해 전력사용량과 전기요금이 각각 약 1.4배, 1.3배 증가한다. 개문냉방이 냉방비 폭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다소비 행태는 국가 간 비교에서도 입증된다. 우리의 전력 소비량은 560TWh(테라와트시·2020년 기준)로 중국(7425TWh)·미국(4109.4TWh)·인도(1280.7TWh) 등에 이은 7위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전력 소비량 4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값싼 전기료 덕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전력 소비에 석유 소비(7위) 등을 더한 최종 에너지 소비는 1억 7470만 toe(석유환산톤)로 전 세계 10위에 랭크돼 있다. OECD 국가 중에는 미국·일본·독일·캐나다에 이은 5위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라는 특성 탓에 산업 부문이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의 60.8%인 1억 2400만 toe를 차지한다.

에너지공단의 에너지 사용량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4714개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이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의 47.0%를 소비했다. 이 비율은 2010년 36.2%에서 10년 만에 10.8%포인트 급증한 수치다. 연료·열 및 전력의 연간 사용량 합계가 2000toe 이상인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은 2000년 2092곳, 2010년 3054곳 대비 각각 125.3% 54.3% 증가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씀씀이가 헤픈 데 반해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국가 간 에너지소비효율 비교 지표로 활용되는 에너지원 단위는 OECD 최하위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원 단위는 0.082(2020년 기준)로 OECD 37개국 중 35위에 그쳤다. 전력원 단위 역시 고작 한 계단 더 높은 34위(0.263)에 불과했다. 에너지(전력)원 단위는 1차 에너지(전력)공급량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특정 시점의 GDP를 산출하기 위해 사용한 총에너지량(전력량)을 의미한다. 에너지(전력)원 단위가 낮을수록 동일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더 적은 에너지(전력)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에너지소비효율이 나쁜 것은 한국전력이 밑지고 전기를 파는 구조가 고착화한 탓이다. 가격이 비싸면 전기를 덜 소비해야 하는 데 계속 값싼 전기를 공급한 결과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값싼 전기료가 사실상의 정부 보조금 역할을 하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 에너지 절약을 손 놓고 있는 셈이다. 이는 개문냉방이 반복되고 빈 사무실을 환하게 밝혀 놓을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특히 4000곳이 넘는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부터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야 하지만 절감률은 1.18%(2020년 기준), 절감 투자비는 1조 2157억 원에 그쳤다. 그 결과 2010~2020년 사이 에너지원 단위 연평균 개선율은 독일 4.0%, 미국 2.4%, 일본 2.6% 등인 데 비해 우리는 1.5%에 그친다. 지난 30년간 전력원 단위는 되레 40% 악화됐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률이 0.19%(2020년 기준)로 세계 최하위권임을 감안하면 이런 지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 개선을 위해 에너지효율을 제고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효율 향상을 통해 GDP가 늘어나도 에너지 소비는 줄어드는 탈동조화를 이룬 제조업 강국 독일·일본을 벤치마킹하라는 주문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효율 개선을 통해 에너지 저소비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93%)에 달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빈곤국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신호와 유인책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