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은 결정된 바 없습니다.”
내년도 예산안의 뼈대가 될 세법개정안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기획재정부가 관련 보도가 나오기만 하면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매년 7월 말께 세법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해온 만큼 실무자 선에서 초안 검토를 마치고 세부 검증 절차에 돌입했을 시기인데도 지나칠 만큼 정중동 모드다. 기재부의 신중한 행보에 일각에서는 다수당인 야당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와 함께 세법개정안 시기의 이례적인 세제실장 공석 사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기재부 관계자는 17일 “지난해 국회 예산안 통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법인세 인하 등 세법개정안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즉 여소야대 상황에서 세법개정안이 야당에 빌미를 잡힐 경우 예산안 통과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학습 효과가 생긴 셈이다. 실제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는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해야 할 세법 심사의 마감 기한(11월 30일)까지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상속세 등 현 정부 첫 세제개편안을 건건이 반대하면서 야당발 예산안이 등장하는 등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법인세 전 구간 1%포인트 인하안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예산안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데다 법정시한(12월 2일)을 21일이나 넘겨 겨우 통과됐다. 올해 정부가 다주택자의 양도세 개편을 서두르지 않고 상속세 전면 개편을 미룬 것도 야당을 자극하지 않고 예산안 통과에 집중하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세법 공청회 성격의 조세재정연구원의 토론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좀처럼 노사 간 합의가 어려운 내년도 최저임금도 외생 변수라는 지적이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노사 양측 간 충족되지 않은 임금 불만을 세재개편안에 반영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세제실장 공석이라는 변수도 생겼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인 이유에서 (개편안)검토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세제실장 공석 상황을 에둘러 설명했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이번 주 중 세제실장 인사가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검토는 했지만 결정된 바 없는’ 세법개정안의 최종 결정이 세제실장 인사와 함께 확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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