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폐막을 앞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3’은 올해 개최지가 독일 베를린이 아니라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착각될 정도로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 속에 진행됐다. 전체 부스의 60% 이상을 차지한 중국 기업들은 전시 작품 중 가장 큰 TV(TCL), 삼성보다 더 얇고 더 가벼운 폴더블폰(아너) 등 한국을 겨냥한 타이틀을 앞세워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폴더블폰인 ‘매직V2’를 공개한 아너사의 조지 자오 최고경영자(CEO)는 기조연설 도중 “삼성 갤럭시 Z폴드5의 두께는 자사 제품보다 40%나 더 두껍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차지했던 첫번째 기조연설 자리를 올해는 중국 업체가 맡아 삼성을 직접 공격한 것이다.
기술력을 과시하는 제품들도 곳곳에 배치됐다. 중국 가전 업체 TCL은 삼성전자의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와 유사한 미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초대형 TV를 전시했다. TCL은 또한 163형 4K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제품인 ‘시네마월’을 내놓으면서 이번 전시회 ‘최대 TV’ 타이틀도 차지했다. 하이센스는 세계 최초 8K 화질의 레이저 TV를 공개했고 창홍은 77·65형 OLED TV뿐 아니라 55형 투명 OLED TV까지 내보이면서 실력을 과시했다.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공을 들여온 중국 기업들은 이번 IFA 전시에서 예전과 확연히 다른 기술 경쟁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과거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두드렸다면 앞으로는 품질도 앞세워 진검 승부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실제 가장 경쟁이 치열한 TV 시장의 경우 현재 중국 업체들은 OLED나 마이크로 LED보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미니 LED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가격 면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화질 측면에서도 격차를 좁힌 만큼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3일 “중국이 한국 제품을 카피한 뒤 몇 가지 개선점을 더하면서 가격은 더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점유율을 빼앗아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가전 업계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기술 격차를 앞세워 중국을 따돌리겠다는 전략이다. 아직까지는 기술력 격차가 월등한 만큼 중국을 의식하기보다 지금 세운 전략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2일(현지 시간) IFA 전시장에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 업체들을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다”면서도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한발 먼저 우리가 주도해 사업해나가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TV 제품에서는 더욱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강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상무는 TV 시장에서 “초대형과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선필 LG전자 HE사업본부 상품기획담당 상무는 “중국 업체들이 초대형을 내세우고 있지만 판매 물량의 30% 정도가 중국 내수 시장”이라며 “(한국을) 따라오기 위해 전시는 많이 했지만 글로벌 점유율은 별로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고부가 중심의 프리미엄 시장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초대형·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제품 외연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51.5%(75형 이상 초대형), 80.0%(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LG전자는 스탠바이미, 스탠바이미 고(Go)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폼팩터(제품 외형)를 계속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전략을 지속해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삼성과 LG의 협업이 삐걱거리는 듯한 모습도 이번 전시회에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LG디스플레이의 패널을 탑재한 83형 OLED 4K TV를 IFA 개막식 전 사전 공개 때 전시했다가 막상 개막 이후에는 전시 제품에서 제외했다. 구체적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삼는 마이크로 LED TV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시장 형성까지) 5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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