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에게 유통 사업을 맡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현재 화학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신 상무가 유통 사업까지 보폭을 확대할 경우 롯데그룹의 양대 핵심 사업을 모두 관할하게 된다. 후계자로서 그룹 내에서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는 셈이다.
신 회장과 신 상무는 22일(현지 시간) 베트남에서 열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그랜드 오픈식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신 상무는 신 회장보다 먼저 행사장에 도착해 잠시 대기하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옆자리에서 앉아 오픈식을 참관했다. 테이프를 커팅할 때는 김상현 롯데 유통군 부회장, 정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 등 그룹 및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념식 직후 취재진과 만난 신 회장은 신 상무와 동행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우리 아들은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앞으로 유통에서도 활동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앞으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 회장과 신 상무의 행보를 놓고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롯데그룹이 전사적 역량을 모아 진행하는 프로젝트 전면에 신 상무를 내세움으로써 그의 그룹 내 입지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신 상무는 지난해 9월 신 회장의 베트남 출장에도 동행해 신 회장과 함께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을 면담한 뒤 호찌민 뚜띠엠 에코스마트시티 착공식 등에도 참석했다. 크게 성장하는 베트남 사업의 성과가 앞으로 신 상무의 경영 발판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뿌리인 유통 사업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실제 신 상무는 신 회장과 함께 올해 3월 방한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총괄회장을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맞이하며 공식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7월에는 ‘2023 하반기 밸류 크리에이션 미팅(VCM·옛 사장단 회의)’를 앞두고 비공식적으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롯데홈쇼핑 본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신 상무가 자연스럽게 신 회장의 전철을 밟아 코리아세븐 공동대표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입사한 신 회장은 1999년 세븐일레븐 대표에 올랐다. 화학으로 시작해 유통으로 밟을 넓힌 것이다.
신 상무는 2020년 일본 롯데홀딩스에 기획 담당 부장으로 입사했다. 지난해 5월에는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 상무보에 임명된 뒤 같은 해 12월 상무로 승진했다. 그는 현재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 공동대표와 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롯데파이낸셜은 롯데캐피탈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날 신 상무는 오픈식이 끝난 뒤 귀빈들과 함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둘러보다 대열에서 벗어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L7 호텔로 이동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돌아본 소감과 신 회장과 동행한 이유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신 상무는 미소 띤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하며 답을 피했다.
한편 신 회장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그랜드 오픈식에서 베트남어로 ‘안녕’이라는 뜻인 “신짜오”로 시작한 축사를 통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롯데그룹의 모든 역량을 모아 진행한 핵심 사업”이라며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 지역경제와 베트남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곳은 롯데그룹이 2016년부터 부지 개발에 착수한 뒤 총 6억 4300만 달러를 투입해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개장하게 됐다”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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