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건희라는 거인의 등에 올라타 30년 동안 발전해왔습니다. 이제 프랑크푸르트에서 피렌체로 나갈 때입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30주년 국제학술대회’에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르네상스 시대 명문가였던 메디치 가문과 비교하며 이처럼 분석했다.
이 회장이 30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한 뒤 ‘초격차’의 삼성이 만들어진 것처럼 앞으로는 메디치 가문과 같은 창조와 사회 공헌의 문화를 삼성에 더해 ‘퍼스트무버(선도자)’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한 시대를 이끌어 근대를 앞당긴 것처럼 이 회장도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먼저 이 회장 사후 유가족이 기증한 일명 ‘이건희 컬렉션’에 메디치 가문과 비슷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 유족은 2021년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및 지방 미술관 등에 기증했으며 당시 미술계에서는 “작품을 재분류해 가치를 재평가하려면 우리나라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고려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이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대표작들이다. 고흐·고갱·모네·샤갈·피카소 등 서양 근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의 작품과 김환기·이중섭·박수근·장욱진 등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도 다수 기증됐다.
김 교수는 “이 회장은 1970년대부터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단순히 돈만 투자한 게 아니라 매일 2~3시간씩 전문가들과 직접 공부해가며 작품을 선정하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값을 따지지 않고 일괄 구매했다”며 “이 같은 철두철미함이 삼성 신경영의 근간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흔히 고(故) 이병철 회장은 청자를 좋아했고 이건희 회장은 백자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병철 회장은 작품의 미적 가치를 중시하고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정립하려 한 것으로 해석한다”며 “보통 아들이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희 회장은 부친의 영향력을 이어받으면서도 레퍼토리를 확장해 더 큰 성장을 이뤄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국내 미술품 수집 과정에서 전해지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해외 경매장에서 국내 문화재를 두고 경쟁이 붙을 경우 상대방이 외국인이면 가격을 묻지 말고 사와야 하지만 한국인과 맞붙으면 물러서라는 게 이 회장의 지시였다”며 “이런 원칙은 이 회장의 미술품 수집이 투자가 아니라 사회 공헌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기부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감염병, 소아암, 희귀 질환 등 의료 분야에 기여한 금액만 총 1조 원에 이른다. 이 돈은 감염병 전문 병원 설립 및 소아암, 희귀 질환 환아 지원에 쓰이고 있다.
과학기술 육성, 체육, 복지 분야 등에 대한 기부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이 세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 규모는 현재 2조 5000억 원에 이른다. 삼성의 대표 사회 공헌 사업인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과 삼성복지재단, 한국판 노벨상으로 불리는 호암상 등도 삼성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사업이다.
김 교수는 “단순히 기부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부의 목적과 일관성”이라며 “삼성의료원이 우리나라 병원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처럼 기부를 통해 문화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게 이 회장 기부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 경영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회장은 항상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을 추구했다”며 “르네상스인(人)이었던 이 회장의 어깨에 올라탄 삼성이 새로운 도전과 도약에 나서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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