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수행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일정에서는 ASML 본사 방문이 단연 최고의 화제였죠.
윤 대통령이 ASML과 반도체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ASML 클린룸을 직접 들어갔다는 겁니다. 이건 헌정 사상 초유일 뿐만 아니라 세계 대통령 중에서도 최초라고 하죠. ASML의 예우도 큰 이야깃거리였습니다. 일반적인 클린룸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하이(High)-NA, 즉 최첨단 극자외선(EUV) 연구설비와 생산 현장을 국빈에게 첫 공개했죠.
ASML은 삼성전자와 한국에 1조 원 규모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 회장과 네덜란드 출장에 동행했던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15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에서 "동탄 공동 연구소는 하이 NA-EUV 기기를 들여와서 양사 엔지니어들이 기술 개발하는 게 주목적"이라며 "반도체 공급망 측면에서 굉장히 튼튼한 우군을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큰 EUV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ASML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공정용 EUV 노광 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데요. 도대체 그럼 EUV 노광기가 뭐길래,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렇게 구현이 어렵다는 걸까. 기사를 보시면서 한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오늘은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ASML 현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노광기 내부를 이 기사에서 한번 ‘언팩’해보려고 합니다. EUV 장비를 구성하는 수십 만 개 부품이 꼭 네덜란드 뿐 아니라 미국·독일 등이 엮여있다는 점이 이번 편의 포인트입니다. 이번에 화제가 된 노광 공정과 ‘하이-NA’에 관한 개괄적 설명도 2편에 있으니 꼭 참고해주세요.
우선 EUV 노광기를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눠서 자세히 살펴봅시다. 먼저 EUV라는 광원(光原)을 생성하는 공간(generator)이 있고요. 그 다음 EUV를 웨이퍼로 이동시키기 위한 11개 반사경, 그리고 EUV가 반도체 미세 회로 모양을 머금고 달릴 수 있도록 하는 포토 마스크. 아주 크게 3개 파트로 나눠집니다.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정말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각 부분을 자세히 뜯어볼까요. 먼저 EUV를 만드는 공간. EUV 생성 부분입니다. 강력한 이산화탄소 레이저와 주석 알갱이가 준비물입니다.
CO₂ 레이저가 주석 알갱이의 충돌로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가 되면서 EUV가 생긴다는 건데요. CO₂ 레이저의 세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셉니다. 전력 단위로 한번 볼까요. 삼성전자 자료에 따르면요. 우리가 공업용으로 쓰는 레이저 커팅 장비의 레이저 파워가 1.5~6 킬로와트(KW) 정도인데요. EUV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력은 무려 25킬로와트(KW)입니다. 전쟁에서 쓰이는 레이저 무기의 레이저가 30KW니까. 엄청난 파워의 CO₂ 레이저가 쓰이는 셈이죠.
주석 방울에도 아주 미세한 기술이 들어갑니다. 레이저와 충돌하는 주석 알갱이는 지름 27㎛(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크기인데요. 이 알갱이들이 1.6㎜ 간격으로 1초에 5만번씩, ktx 기차 스피드와 맞먹는 288km/h 속도로 ‘도도도독’ 떨어집니다. 이것도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또 일정하지 않은 알갱이 크기로 떨어지면 망하는 겁니다. 이걸 잡는 게 기술이죠.
아무튼 이 CO₂ 레이저와 주석 알갱이가 탕! 부딪히며 수십만 ℃의 플라즈마가 발생하면서 EUV가 발생하는데요. 이때 발생하는 EUV를 ‘콜렉터’라는 렌즈가 싹 모아서 다음 과정으로 진격을 합니다.
이 공학 기술은 ASML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트럼프라는 회사가 CO₂ 레이저를 생산합니다. EUV 빛을 모아주는 렌즈는 독일 최고의 렌즈 회사 자이스가 만들고요. 이 EUV 생성기를 미국 사이머라는 회사가 트럼프, 자이스와 합작해 만듭니다.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기술 강국들이 서플라이 체인을 구성한 것이 포인트입니다. 전 세계적 협력인 셈이죠. 미국의 중국 EUV 규제에서 ASML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미국의 국방력은 물론이고 최첨단 기술이 함께 탑재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다음 봐야할 곳이 마스크입니다. 포토마스크는 EUV가 회로 모양을 머금고 웨이퍼로 달려가기 위해 EUV가 반드시 ‘터치’하고 달려야 하는 부분입니다. 기존 노광에 쓰였던 심자외선(DUV)과 다르게 EUV는 웬만한 물질에는 흡수되어버리는 아주 까다로운 빛이라서요. 빛을 마스크에 관통시키 방법이 아닌 반사하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까다로운 성질의 EUV를 통과시키려면 또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겠죠? 이 마스크는 몰리브덴(Mo)과 실리콘(Si)을 순서대로 겹겹이 쌓은 독특한 소재로 만듭니다. 이건 일본의 호야가 세계에서 제일 잘합니다. EUV 노광기 소재의 일부라고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회로 모양이 새겨져 있지 않은 블랭크 마스크는 억 원 단위의 고가입니다. 삼성전자, TSMC 등 유력 반도체 제조사들은 마스크샵이라는 곳에서 이 블랭크 마스크 위에 자기들이 웨이퍼에 찍어내고 싶은 회로를 그려내는데요. 이 완성된 마스크 한 장 값이 거의 10억 원 단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마스크에 초미세 회로를 새기는 장비인 마스크 라이터도 요즘 상당히 핫한 분야인데요. 오스트리아의 IMS라는 회사의 장비도 ASML EUV 노광기만큼 공급이 부족해 업체들 간 쟁탈전이 벌어졌고요. 이 완성된 마스크를 검사하는 일본 레이저텍 장비도 상당한 인기입니다. 독일 자이스와 미국 KLA, 한국의 이솔도 마스크 검사 시장의 플레이어입니다.
그리고 이 마스크를 오염 물질이 안 묻은 건강한 상태로 사용 기한을 늘리기 위해서 덮개를 한 개 씌우는데요. 이걸 레티클 또는 펠리클이라고 합니다. 마스크 보호를 하면서 EUV도 두번이나 통과를 시켜야 하는 극악한 기술 난도를 자랑합니다. 이 EUV 펠리클 시장에서는 현재까지 일본 미쓰이 화학이 상당히 강한 면모를 띄는데요. 우리나라 에스앤에스텍, 에프에스티가 앞으로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자, 그리고 EUV 노광기 안에는 11개의 ‘미러’가 있습니다. 이 EUV 노광기 미러의 핵심 포인트는 ‘반사’입니다. 말 그대로 EUV는 물체를 통과할 수 없는 까다로운 빛이니까, 이 광학계 내에서 EUV를 모으고 이동시키는 작업은 반사를 잘하는 거울들이 합니다. 생성기에서 만들어진 EUV를 ‘티키타카’하듯 마스크 쪽으로 이동을 시키는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 부분이 있고요. 마스크에서 회로를 머금은 빛을 다시 6개의 미러가 웨이퍼까지 이동시킵니다. 이 6개 미러 부분을 투영계(projection optics)라고도 합니다.
굳이 노광기 안에 11개의 반사 미러를 두는 이유는요. 우리가 돋보기로 어떤 물체를 관찰한다고 가정해볼까요. 생각해보니 돋보기 렌즈의 가쪽은 약간 흐릿했던 모습, 기억나시나요. 노광기도 똑같습니다. 반도체 노광공정은 회로의 모양이 정 중앙이든 가쪽이든 왜곡 없이 반듯하게 웨이퍼로 닿이는 게 생명입니다. 이런 렌즈의 원천적인 문제를 고도의 공학 기술을 담아 고성능 반사경으로 보완을 하다보면 11개 미러가 장착된다고 합니다. 이 원리는 하이-NA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러 부분도 ASML과 자이스의 협력 관계가 두텁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수십년 간의 연구를 거쳐 완성됐고, 4년 전에 반도체 양산 라인에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9년 삼성전자가 7나노 반도체 공정에 ASML의 EUV 노광기를 최초로 도입한 이후로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 기라성 같은 반도체 빅테크들이 EUV 기술로 양산을 시작했죠. 최근에는 3나노 이하 반도체 제조의 핵심 기술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EUV를 노광 공정에 도입하는 이유를 2탄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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