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를 공개하면 단기적으로는 제품 판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업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니 오히려 망설임 없이 특허를 공개해야 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안정호(사진) 시몬스 대표가 8일 불이 잘 붙지 않고, 붙어도 잘 꺼지는 난연 매트리스 제조공법 특허를 전격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는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 제조공법 관련 특허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해 매트리스를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특허 공개는 겨울철 화재 피해자를 줄이려면 난연 매트리스 보급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는 안 대표의 소신에 따른 결단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이미 철 지난 특허를 공개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핵심 경쟁력을 좌우하는 특허를 공개하는 사례는 찾아 보기 힘들었다. 안 대표는 “겨울철을 맞아 화재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난염 처리가 안된 매트리스가 인명을 앗아가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기업의 활동은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하는 만큼, 다른 회사들도 함께 난연 매트리스로 바꿔 나간다면 결국엔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화재로부터 안전한 매트리스가 널리 보급돼 안타까운 사고가 줄어들길 바란다”고 전했다.
난연 처리가 안 되어 있는 매트리스는 불이 나면 불쏘시개로 돌변해 실내가 폭발적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불에 좀처럼 타지 않는 난연 매트리스는 플래시 오버를 방지해 사람이 화재를 피해 탈출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 소방청이 발표한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집에서 발생한 화재(8497건)는 주방이 3927건(45.7%)으로 가장 많았고 침실이 1188건(13.8%)으로 뒤를 이었다. 피해자는 오히려 침실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화재 사망자는 침실(85명), 거실(43명), 주방(25명) 순이었다. 부상자 역시 침실(257명), 주방(252명), 거실(153명) 순이었다.
시몬스는 2016년부터 2년 간의 연구 끝에 불에 잘 타지 않고, 불이 붙더라도 천천히 자연 소멸되는 신소재 ‘맥시멈 세이프티 패딩’을 개발했다. 2018년 국내 최초로 일반 가정용 매트리스 전 제품을 화재안전 국제표준규격(ISO 12949)과 국내 표준시험방법(KS F ISO 12949)으로 시험한 뒤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는 봉합실, 봉합 면 테이프, 매트리스 밑부분의 미끄럼 방지 부직포까지 모두 난연 기능을 갖춰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설 방재시험연구원과 함께 실제 화재 상황을 가정해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를 시험한 결과 불이 붙은 지 1분 후 불길이 자연 소멸됐다. 반면 일반 매트리스는 4~7분여 사이에 큰 불길에 휩싸이고 실내 전체가 폭발적으로 불꽃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를 일으켰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매트리스 업계가 자발적인 노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관련 제도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난연 매트리스 보급률이 저조한 것은 미국·캐나다·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난연 매트리스만 유통되도록 법제화한 것과 달리 국내에선 관련 법규가 미비한 것과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침대 매트리스 관련 화재안전성능 검사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KS G 4300'은 시판용의 10분의 1 크기 시험체에 담뱃불로 불을 붙인 뒤 ‘불이 잘 붙는지’와 ‘화재 시 손상 범위’ 등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다. 불이 붙은 담배를 매트리스에 올려놓았을 때 10cm 이상만 타지 않으면 KS G 4300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2007년부터 시판 제품과 동일한 매트리스의 윗부분과 옆면을 가스 버너로 동시에 가열해 화재 안전성을 측정한다. 매트리스 위는 19킬로와트(kW) 화력에, 사이드는 10킬로와트(kW) 화력에 노출시킨 뒤 최대 열방출율이 200킬로와트(kW)를 초과하지 않는지 등을 검증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민 대다수는 매트리스의 난연 성능에 대해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몬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공간 화재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0.8%는 본인이 사용하는 매트리스에 난연 성능이 있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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