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 노스 아일랜더홀(North Islander) 오전 10시 30분. 중국 대표 가전업체 TCL의 CES 2024 프레스컨퍼런스는 11시부터 시작이었지만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100m는 넘게 늘어서있었다. 기다리는 취재진은 미국, 유럽 등 서구권이 대부분이었다. 컨퍼런스 홀은 오전 10시 55분에나 문이 열렸다. 500명은 수용 가능해 보이는 홀은 이내 취재진으로 꽉 들어찼고 일부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컨퍼런스를 청취했다. 11시가 되자 창업자인 리둥성 TCL 회장이 등장했다. 리 회장은 “1990년만 해도 단순 참관객으로 CES를 찾았다”며 “34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적인 TV 기업이 된 것은 물론 모바일, 가전 등 종합 정보기술(IT) 업체로 도약했다”고 밝혔다. 관객석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취재진의 경탄은 TCL이 선보인 신제품에서도 여념없이 터져나왔다. TCL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차세대 TV와 스마트 글라스를 잇달아 선보였다. 그간 중국은 기술력은 한국에 밀리지만 ‘가성비’가 좋아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맹추격했다. 그러나 이제는 AI로 역전을 노리고 있다.
이날 TCL은 프레스 컨퍼런스를 열고 AI를 탑재한 ‘115인치 QD(퀀텀닷)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와 스마트 글라스 ‘레이 네오 X2 라이트(RayNeo X2 Lite)’를 선보였다.
TCL은 이날 발표에서 수 차례 AI를 강조했다. 스캇 라미레즈 TCL 북미법인 마케팅·개발 부사장은 “더 좋은 AI 프로세서를 탑재할 수록 화질도 좋아진다“며 “올해 신제품에는 자체 AI 프로세서인 AIQP S5·Q6를 탑재했다”고 밝혔다. 그는 “AI 프로세서는 단순히 화질만 높이는 게 아닌, 스포츠 관람, 게임, 영화 감상 등 다양한 콘텐츠에 따라 맞춤형 밝기 등을 설정한다”며 “최고의 시청 경험을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눈길을 끈 건 AI를 탑재한 스마트 글라스 레이 네오 X2 라이트다. 스테판 스트레이트 TCL 모바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중국에서는 출시하자마자 품절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2월에는 글로벌 출시를 준비 중으로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레이 네오 X2 라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자체 AI인 레이네오 AI가 탑재된 점이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AR 1세대 플랫폼을 탑재해 끊김없이 오디오와 영상, AI 구동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레이 네오 X2 라이트를 쓰게 되면 ‘페이페이’라는 AI챗봇이 비서처럼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준다. 가령 가까운 식당을 찾는다면 투명 마이크로 LED 화면에 증강현실(AR)로 가는 길이 표시되는가 하면, 외국인과 대화 시에는 실시간으로 번역된 내용이 안경 화면에 표시되는 식이다. 총 8개의 외국어를 지원한다.
스마트 글라스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손에 따로 들고다닐 필요가 없고 AR 디스플레이를 통해 실제 세상과 정보도 한 눈에 볼 수 있어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TCL이 AI를 탑재한 스마트 글라스를 내놓으면서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다. 기존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에서는 한국 기업에 밀렸을지 모르지만 스마트 글라스라는 새로운 전장에서는 앞선 AI 기술을 기반으로 역전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업체들은 가격 뿐만 아니라 성능 측면에서도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성능이 크게 뒤처지지 않는데 가격은 절반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 세계에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TV 출하량은 전년 보다 9.8% 감소한 3630만 대에 그쳤다. 절대 판매량은 세계 1위지만 언제 1위를 뺏길지 모를 위태로운 처지다. 하이센스와 TCL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4%, 16.3% 증가한 2700만 대와 2620만 대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LG전자는 7.4% 감소한 2291만 대로 4위에 머물렀다.
라스베이거스=서종갑 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