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실시간으로 8000여 명이 제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틱톡 전체 실시간 방송 순위 6위네요.”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2023올리브영 어워즈&페스타’ 행사장. 중국인 뷰티 인플루언서 페이지에씨가 자신의 틱톡 계정을 통해 현장을 중계했다. 페이지에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의 팔로워 수가 약 59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다. 그가 틱톡을 통해 송출하는 화면 한쪽에는 올리브영의 자체브랜드(PB)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탭이 마련돼있었다.
엔데믹 이후에도 채워지지 않고 있는 중국 보따리상 ‘다이궁’의 빈자리를 라이브스트리밍 쇼핑이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19 동안 온라인 직구를 통해 해외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코로나19 비대면 기간 동안 라이브스트리밍 쇼핑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의 단체관광이 재개됐지만 ‘개별 관광’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중국인들의 관광 쇼핑액은 오히려 줄어드는 모습이다.
19일 중국 해관총서와 미국 농업부에 따르면 중국의 국경간 전자상거래(Crossborder e-Commerce) 수입액은 팬데믹 직후인 2019년 127억 5000만 달러(약 17조 1258억 원)에서 이듬해 791억 7000만 달러(106조 3411억 원)으로 1년 새 6배 이상 성장했다. 미 농업부 해외농업국은 “코로나19의 글로벌 충격으로 급속도로 불어난 국경간 전자상거래가 ‘다이궁’이라는 비공식 해외 대리 쇼핑을 대신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 해외농업국은 중국의 e커머스 업체들이 고품질의 수입식품, 화장품, 명품, 유아용품 등 중국인들의 늘어나는 해외 제품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봤다. 실제 중국의 전자상거래 수입액은 2020년 이후 꾸준히 700억 달러대를 유지하며 엔데믹 이후 ‘뉴노멀’로 자리잡았다.
특히 중국 소비자들은 당국의 봉쇄조치가 극에 달하던 팬데믹 기간, 지루한 비대면 생활에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베이징대 경영대학원이 이 기간 급증한 중국인들의 라이브스트리밍 쇼핑 중독을 우려하는 논문을 발표할 정도였다. 중국의 토종 SNS인 QQ·웨이보·틱톡 등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콘텐츠와 함께 상품을 판매하는 식인데, 트렌드를 주도하는 막강한 소비 파워로 판매액의 25~50%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는 게시물마다 일정 금액의 광고비를 받는 반면, 중국판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KOL(Key Opinoion Leader)’은 판매 브랜드와 직접 제휴해 출연료와 수수료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소비자들의 해외 쇼핑 행태가 변화하면서 국내 관광업계도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올리브영의 명동 상권 매장을 방문한 외국인의 국적별 비중은 2019년 중국·일본·동남아·영미권 순에서 지난해 동남아·일본·중국·영미권으로 바뀌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 중국 관광객 비중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에서, 최근 국적이 다변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방한 중국인의 1인당 평균 관광지출액에서 숙박비·교통비·문화 지출비는 2019년 대비 지난해 소폭 증가한 반면 쇼핑비는 유일하게 312.3달러 감소했다. 올리브영은 명동에 매장안내 서비스가 영어·일본어·중국어로 된 외국인 특화 점포를 열며 타게팅 소비자들을 다양화했는데, 지난해 외국인 매출액이 전년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중국 관광객들의 쇼핑 행태가 크게 바뀌면서 국내 면세점 업계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현지 SNS와 연계된 티몰글로벌, JD월드와이드, VIP숍 등 중국의 e커머스 3사가 국경간 전자상거래 트래픽의 80%를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유통업계의 역직구 진출 환경 역시 녹록치 않아보인다. 국내에서는 뷰티 플랫폼으로 사업을 운영해오던 올리브영도 국내 중소업체들과 협업해 PB 제품들로 중국 진출을 재정비하고 있다. 2017년 사드(THAAD) 보복으로 중단된 중국 단체관광이 지난해 재개됐지만,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개별 관광’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유커의 빈자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12조 4512억원으로, 코로나19로 15조원대로 급감했던 2020년 수준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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