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등 겹악재로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여의도 증권가에서 인원 감축 칼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의 올해 경영 여건도 녹록지 않은 만큼 인력 감소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영업하는 증권사 61곳의 총 임직원 수는 2022년 3분기보다 574명 줄어든 3만 9070명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PF 부실 문제의 직격탄을 맞은 다올투자증권이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전체 직원의 31%인 167명의 임직원을 줄였다. 이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전체 61개 증권사 가운데 가장 큰 감원 폭이다.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006800)도 같은 기간 임직원 수가 142명(3.8%) 줄어든 357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또 이 기간 SK증권이 74명(7.5%)을 줄인 것을 비롯해 하이투자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도 각각 55명(5.9%), 36명(13.4%)을 감축했다. 직원 수가 3000명 안팎에 달하는 대형 증권사인 KB증권과 삼성증권(016360), NH투자증권(005940), 한국투자증권도 각각 62명(2.0%), 30명(1.1%), 20명(0.6%), 17명(0.5%)을 감원했다.
증권사들의 인원 감축 바람은 지난해 4분기를 거쳐 올해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다올투자증권의 경우 올 1월 1일을 기점으로 부동산PF본부를 기존 4개에서 2개로 통폐합했다. 하이투자증권도 이달 희망퇴직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0월 부동산 사업부를 7개에서 4개로 대폭 축소했다.
증권사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나선 것은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1~2022년 코로나19 확산 때 넘쳐나는 유동성을 토대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증권사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 장기화와 주식시장 부진으로 지난해부터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에 국내외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상당수 투자 자산이 손실로 돌아선 부담도 있었다.
실제로 해외 부동산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던 미래에셋증권은 홍콩의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 미국의 댈러스 스테이트팜 등에 투자했다가 지난해 수백억 원대 손실을 봤다. 부동산 PF 물량을 많이 떠안은 다올투자증권은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 증권사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적자는 667억 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의 지난해 4분기에도 부진한 실적을 공개할 것으로 추정하고 인력 감축 추세가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키움증권(039490)·한국금융지주(071050) 등 5개 증권사들이 지난해 4분기 149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해외 상업용 부동산 손상 차손, 부동산PF 관련 충당금 때문에 대형 증권사들의 실적이 악화됐다”며 “증시 거래대금 감소에 따라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가 줄어든 점도 악재”라고 말했다. 우도형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가 본격적으로 인하돼야 증권사들의 실적도 반등할 것”이라며 “부동산PF나 해외 대체투자 부실로 인한 손실 부담은 이후에도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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