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처럼 쇼핑하세요.’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테무의 홍보 문구에 끌리듯 접속하면 추천 아이템이 죽 뜬다. 니트 상의 1만 4660원, 수제 가죽 지갑 8067원, 스니커스 8639원, 키링 997원….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도 결제 금액이 몇 만 원 수준이다. 억만장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쇼핑하는 부자가 된 느낌이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티셔츠 한 벌 사기도, 밥 한 끼 먹기도 쉽지 않은 요즘, ‘만 원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이 순간을 넘어서면 분노와 배신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예전 국내 쇼핑몰에서 산 것과 동일한 제품이 5분의 1, 심지어 10분의 1 가격에 올라온 것을 보게 될 때다. 그동안 국내 쇼핑몰 판매업자들은 얼마나 폭리를 취했나, 소비자들은 얼마나 호구 노릇을 한 것인가. 이러다 보니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쇼핑몰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고물가 시대에 알뜰하고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알리·테무는 필수 앱이 됐다.
국내 e커머스 업계로서는 이 같은 상황이 달갑지 않다. 중국의 값싼 재료비와 인건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초저가 제품들이 중간 유통 과정을 건너뛰고 알리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바로 배송되는 구조를 국내 업계가 이겨낼 방법이 없다. 심지어 배송비가 무료인 경우가 태반이고 배송 기간도 각오했던 것보다 짧다. 소비자들이 떠나는 것을 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의 공세는 단순히 초저가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조악한 품질이야 제품이 싸니까 그렇다 쳐도 브랜드 제품의 ‘짝퉁(가품)’이 버젓이 올라오는 것은 큰 문제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물론이고 국내 브랜드 가품까지 유통된다. 국내 업체들이 가품을 판매하면 처벌을 받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통관 외에는 마땅한 규제 절차도 없다. 알리 등 일부 중국 업체들은 최근 품질보증 서비스 출시, 한국 브랜드 보호 전담팀 구성 등 지식재산권 보호에 힘쓰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가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소비자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연맹과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알리 관련 소비자 불만을 조사한 결과 알리에 대한 불만 건수가 2022년 93건에서 2023년 465건으로 1년 사이에 5배 급증했다. 또 올해 1월에만 150여 건이 접수됐다.
급기야 이달 1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국내 e커머스 업계와의 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업계는 빠른 속도로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 e커머스를 방치하면 국내 유통산업 기반이 붕괴하고 소상공인 생계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에서 제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국내 소상공인은 관세와 부가가치세, KC 인증 취득 비용 등을 내야 하지만 중국 플랫폼은 별다른 인증 없이도 상품 판매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묘책은 없어 보인다. 간담회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받는 KC 인증이나 통관 지연 등 역차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요청 정도가 나왔다. 정부가 국내 업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발제자로 나선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기업과 정부에서 유통·제조·물류까지 전반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역직구를 활성화하고 직구와 역직구 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서도 H&M이나 자라·포에버21과 같은 패스트패션 업체들과 전통 할인 매장 달러제너럴·달러트리 등이 테무·쉬인 등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빠르게 점유율을 빼앗기면서 중국 업체의 공습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하지만 미국 업계가 마냥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고객들이 직접 제품을 보고 구입할 수 있도록 소매점을 구축하거나 고객 서비스 및 품목 큐레이팅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e커머스 업계는 가격경쟁 대신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모색하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 e커머스 업계가 참고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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