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성과급 논란이 산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업종별 대기업마다 지급한 성과급 규모가 극명하게 엇갈린 것은 물론 동종업계에 있는 기업끼리도 성과급 지급률이 차이가 나면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수요 한파를 겪으며 위기를 맞이한 반도체 업계가 대표적이다. 업계 1위인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으로 인해 지난해 DS부문의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이 연봉의 0%로 책정됐다. OPI는 소속 사업부의 실적이 연초 설정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이익의 20% 내에서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초 한 차례 지급하는 성과급 제도다. 삼성전자 DS부문 직원들은 작년 초를 포함해 거의 매년 OPI로 최대치인 연봉의 50%를 받아왔지만 올해는 빈 봉투를 맞이하게 됐다.
반면 SK하이닉스(000660)는 구성원들에게 1인당 자사주 15주와 격려금 200만 원 지급을 결정했다.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최근 14만 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총 400만 원가량의 성과를 받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임직원 사기진작에 주력하고자 했다는 것이 회사 측은 설명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DB하이텍(000990)도 지난달 연봉의 20.8%에 달하는 수준의 생산성향상 격려금(PI)을 지급했다.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1%, 65% 줄었지만 고급 인재 유출 방지 차원에서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경쟁사들의 격려금 지급 소식에 삼성전자 사내 민심에도 불이 붙었다. 급증하고 있는 노조 가입자 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한 달 사이 7000명 가까이 늘면서 16일 기준 1만 7743명을 기록했다. 최근 일주일 간 가입자 수도 581명에 달한다. 전체 가입자 수 비중도 삼성전자 전체 직원(12만 명)의 14%까지 증가했다. 반도체 부문 사내 게시판에는 노조가입 완료를 뜻하는 ‘노가완’ 제목을 단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삼노는 올해 임금단체 협상을 앞두고 '성과급 지급 기준을 경제적 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라'는 요구안을 사측에 보냈다. 또한 최근 반도체 부문장인 경계현 사장을 만나 직원들 사기 진작을 위한 격려금 200% 지급 등을 요청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상여금 지급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성과급 문제로 불거진 불만은 임금 협상에까지 옮겨 붙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참여하는 노사협의회, 대표 교섭권을 가진 전삼노와 임금 인상률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임금 기본 인상률을 예상 물가 인상률 수준인 2.5%로 제시했다. 반면 노사협의회는 5.74%를, 노조는 8.1%를 요구했다. 삼성전자와 전삼노는 15일과 16일 연달아 교섭했지만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노조는 "회사가 협상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없다"며 쟁의대책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단체행동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부품업계에서도 성과급 몸살이 한창이다.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인 기본급 240%의 성과급을 결정한 LG이노텍(011070)에서도 노조를 중심으로 성과급 산정방식 개편 요구가 일고 있다. LG이노텍 노조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이노텍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삼성전기(009150)도 지난달 말 성과급이 연봉의 1%로 책정되자 내부에서 거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1973년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노조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들 역시 성과급 지급 기준을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의 성과급 몸살은 비단 올해만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2021년 SK하이닉스에서는 저년차 직원 중심의 사무직 노조가 성과급 제도인 초과이익분배금(PS) 산정기준 공개를 주장하며 경영진에 문제제기를 했다. 성과급 기준 대상인 2020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두 배로 늘었는데 성과급 지급률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정확한 기준을 공개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이에 이후 SK하이닉스 노사는 EVA를 폐지하기로 합의하고 PS 기준으로는 예측 가능성이 높은 영업이익을 연동하기로 했다.
성과급 논란의 핵심은 작년 실적을 감안해 성과급을 달라는 직원들과 올해 쉽지 않은 경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측 간의 불협화음이다. 여기에 임원진은 불황에도 수억 원대 성과급을 유지하면서 직원 성과급에는 왜 손을 대느냐는 반발심도 합쳐져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의 특징이 투영된 현상이라고 본다”며 “SNS 등 온라인을 통해 다른 기업들과 성과급을 비교하기도 쉬워졌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도 막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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