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일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은 전액 비과세해 기업의 부담을 덜고 더 많은 근로자가 혜택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초 부영그룹과 사모펀드 운용사 IMM이 직원들에게 자녀 1인당 최대 1억여 원을 출산지원금으로 지급하기로 하면서 해당 금액에 붙는 세금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날 결정으로 기업과 근로자 모두 추가적인 세 부담이 없어져 앞으로 기업의 출산지원금 확대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17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출산지원금을 상여로 처리해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기업은 출산지원금을 비용 처리하고, 또 상여로 간주되지 않도록 해 소득세 부과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자녀 출생 이후 2년 내 출산지원금을 지급받은 경우 전액 비과세하겠다”며 “기업도 근로소득, 즉 인건비가 되면서 비용(처리)으로 인정받게 돼 추가 세 부담이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400명의 청년 앞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국정 동반자가 청년”이라며 총 7가지 항목의 지원책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양육비 선지급제도 도입 △헬스 시설과 수영장 이용료 소득공제 △청년도약계좌 조건 완화 △마음 건강 상담 진료 서비스 지원 △워킹홀리데이 등 국제 교류 확대 등이다.
윤 대통령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공부할 기회를 놓치는 청년이 없게 하겠다”며 장학금 확대 계획도 밝혔다. 현재 100만 명인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을 150만 명까지 늘리고 12만 명이 받는 근로장학금도 내년부터 20만 명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 주거장학금을 신설해 연간 240만 원까지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입장에서 재정으로 약간의 투자는 돈이 되는 장사”라며 “뛰어난 우리 청년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 윤 대통령은 “(청년 지원은) 퇴보는 없다. 전진과 확대만 있다. 창의적인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면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1억 수령시 2500만원 절세…"정부·기업이 출산장려 비용 분담"
정부가 기존 세제의 틀을 벗어나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에 대해 ‘전액 비과세’ 방침을 꺼내든 것은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기업의 출산지원금 지급이 활성화될 경우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는 5일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 전액에 대해 근로소득세 비과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부영이 시행한 것과 같이 특정 기업이 근로자에게 1억 원을 출산지원금으로 지급하더라도 그 금액에 대해 전혀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출산 후 2년 내에만 지급하면 해당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대 지급 횟수는 2회로 제한된다. 기재부는 2021년 이후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도 이 같은 제도를 소급 적용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대책에 출산지원금을 받는 근로자들은 수천 만 원 안팎의 세금을 아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득세 과세표준이 4000만 원인 근로자가 현행 제도에서 1억 원의 출생장려금을 받을 경우 3410만 원의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기재부 방침대로 제도가 개선될 경우 소득세는 원래 연봉에 대한 세금 492만 원만 내면 된다. 만약 출산지원금을 받는 근로자가 최고 소득세율 45%를 적용 받는 10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가정하면 1억 원 수령 시 4500만 원의 소득세를 절약하게 된다.
연봉 기준으로 보면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1억 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게 되면 기존에는 연봉(250만 원)과 지원금(2500만 원)을 포함해 총 275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지만 앞으로는 연봉(250만 원) 부분만 납부하면 돼 2500만 원을 아끼게 된다.
정부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대원칙을 깨고 전액 비과세 카드를 내놓은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일정액의 세금을 내게 되는 현행 세제의 틀 내에서는 청년 세대와 기업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출산지원금을 근로소득으로 볼 경우 과표구간에 맞는 근로소득세를, 증여로 볼 경우 10%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생장려금이 활성화될 경우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해야 할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인건비로 손금 처리하면 세금 효과를 통해 정부와 기업이 실질적으로 출산지원금을 함께 분담하는 효과가 있다”며 “근로자의 실질 혜택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출생을 해소하겠다는 목표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저출생을 민간에서 해결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 있는 곳 과세' 대원칙 깨고
근로자 실질혜택 늘려 출생률 제고
근로자 실질혜택 늘려 출생률 제고
이번 지원책은 기업에도 인센티브가 된다. 근로소득은 회계 과정에서 인건비(비용)로 인식돼 법인세 과세의 기준이 되는 금액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증여의 경우 그런 혜택이 없다. 출산지원금 지급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에도 이득이 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기재부는 제도 개선을 위해 연내 소득세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소득세법 12조 3항에 규정된 비과세 항목 조항만 개정하면 된다. 개정안은 올해 세제개편안에 포함돼 연말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출산지원금이 결국 여력이 있는 업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박탈감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이미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대기업 근로자들이 혜택을 보지 않겠느냐”며 “이들은 출산하면 1억 원이 생기는데 중소·중견기업 근로자들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 영역에서의 불평등이 박탈감이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일가 친척들이 함께 경영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상 증여세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재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형제·자매·사촌 특수관계자는 제외한다는 내용을 넣어 조세 형평성을 유지할 생각”이라며 “지원금을 받은 근로자의 기본급이나 호봉을 낮추는 등의 악용 사례가 발생할 경우 조세 회피로 보고 추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세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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