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스미스 팰리서 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과거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황태자로 한국시장과 삼성 지배구조를 제일 잘 아는 공격수로 불린다.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 펀드 팰리서 캐피탈은 지난 4일 5개 행동주의펀드 연대의 주주제안을 공개 찬성하며, 국민연금공단에 서한을 보내 주주제안을 지지하는 의결권 행사를 촉구했다. 삼성물산은 우호지분이 43%여서 국민연금(7.25%)마저 돌아서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패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팰리서 캐피탈은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지지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위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스튜어드십 책무의 필연적인 연장선 위에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아직 의사결정을 하기 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총 전 투자심의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개최해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과거 해외 헤지펀드의 주주행동에 힘을 실어준 적은 거의 없다.
눈에 띄는 건 팰리서 캐피탈이 앞서 주주제안을 한 5개사에 포함돼있지 않다는 대목이다. 지분 1.46%(237만 5000주)를 보유하고 있는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은 1% 이상(6개월 이상)이라는 주주제안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대하는 울프팩(늑대무리) 전략을 썼다. 여기에 미국계 투자운용사 FPA(0.37%), 스페인 코바스 인터네셔널(0.06%), 셀렉션 펀드(0.07%)가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의 주주제안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팰리서 캐피탈은 연대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으면서 이들을 지지하며 이슈를 제기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화이트박스의 설립자인 사이먼 왁슬리 역시 엘리엇 출신이어서 사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서로 같은 편인 행동주의펀드끼리 서로 지지한다고 얘기하는 전략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행동주의펀드에 맞서는 삼성물산도 비상이다. 사실상 표 대결에서 앞설 가능성이 높으나,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 외에도 사외이사, 감사 선임 등의 안건 통과를 위해 주주들을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국내외 주요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잇따라 기업설명회(IR)을 열었다. 통상 주총을 앞두고 하는 IR이지만, 주주 환원책을 적극 설명하며 위임장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외국인 주주들은 주총 1~2주일 전에 미리 마감하는 만큼, 의결권 행사는 이제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투표는 11일부터다.
시장에서는 단기 차익을 노리며 경영활동에 제약을 주는 행동주의펀드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우려도 크다. 주주 제안을 통해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린 뒤 시세차익만 챙기고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수 경희대 명예교수는 11일 “회사가 번 돈을 앞으로의 투자나 어떤 위험에 대비해 보유하고 있으면 그 자체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며 “분위기상 억지로 주주 환원을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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