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출하량을 지난해보다 최대 2.9배로 늘릴 수 있음을 내비쳤다. 당초 올해 HBM 출하량을 전년 대비 2.5배 정도 계획하고 있음을 밝힌 적 있는데 고객사 수요에 맞춰 더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HBM 검정 통과를 앞둔 삼성전자가 기존 생산 목표를 공격적으로 수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8단의 HBM은 물론 12단 HBM까지 비슷한 시기에 납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26일(현지 시간) 삼성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국제 반도체 콘퍼런스 ‘멤콘 2024’에서 올해 비트(bit) 기준 HBM의 출하 목표치를 전년 대비 최대 2.9배로 제시했다. 올해 초 CES 2024 등에서 밝힌 2.5배를 넘어선다.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부사장)은 “고객사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납품량이 늘어난다면 추가적인 40% 증산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진행 중인 삼성전자의 HBM에 대한 엔비디아 검증이 순조롭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납품을 시작하면 HBM의 공급량을 곧바로 늘릴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출하량 전망치 상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삼성전자 HBM을 검정 중”이라는 발언 직후 전해져 의미심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CEO는 삼성전자가 선보인 HBM3E 12단 제품에 ‘승인(Approved)’ 서명을 남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중장기 HBM의 출하·개발 로드맵 또한 소개했다. 지난해를 기준점으로 2026년에는 13.8배, 2028년에는 23.1배의 HBM을 출하할 계획이다. 황 부사장은 “지난해 메모리 가격 하락에도 대형 설비투자를 집행해 내년부터 생산능력에서 리더십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
HBM3E를 이을 차세대 HBM에 대한 정보 역시 대거 공개됐다. 차세대 삼성전자 HBM4 코드명은 ‘스노우볼트’로 정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샤인볼트’ ‘스노우볼트’ ‘플레임볼트’ 등의 상표권을 출원한 바 있으나 HBM3E에 쓰인 샤인볼트 외에는 어느 제품에 어떤 이름이 쓰일지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 2026년 말 등장을 목표로 현재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정식 규격 제정을 앞두고 있는 HBM4 규격이 완성 단계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황 부사장은 “규격 초안(드래프트)은 사실상 완성됐고 현재 메모리 3사 모두 설계와 테스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안다”며 “HBM4부터는 완전한 ‘맞춤형’으로 설계되는 만큼 고객사들과 최종 규격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HBM4 대역폭이 기존 전망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단서 또한 제시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HBM4는 데이터입출구(I/O)가 2048비트로 HBM3·HBM3E 대비 2배 늘어나지만 한 출구당 최대 속도는 8Gbps(초당 기가비트)로 기존과 같다. 그러나 황 부사장은 “고객사 요청이 있을 경우 출구당 최대 속도를 10Gbps까지 높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HBM4가 현재 예상되는 표준보다 25% 더 넓은 대역폭을 지닐 수도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공개한 HBM3E 12단과 2026년 출시할 HBM4로 그간 한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HBM 시장에서 반전을 노린다. 고적층에 유리한 비전도성필름(NCF) 기술을 고도화해 12단부터 최대 16단까지 적층이 기본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HBM4에서는 ‘초격차’를 재연할 계획이다. 황 부사장은 “현재도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50%”라며 “메모리·파운드리·설계·패키징 역량을 모두 지닌 삼성전자가 맞춤형 HBM 시장의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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