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의 통상정책 흐름과 향후 3년간 청사진이 담긴 ‘신(新)통상전략’을 5월에 발표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고 학계와 업계의 전문가들이 검토한 후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작성한 집단지성의 결과물입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넉달간 가장 공을 들였다죠. 정 본부장은 지난 10일 대한상의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이에 대해 “연대와 공조를 통한 국익 극대화 통상전략”이라고 한줄 요약했습니다. 곧 베일을 벗을 신통상전략을 미리 살짝 들여다 봅니다.
먼저 시곗바늘을 11년 전으로 되돌려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은 통상업무가 외교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된 해이기도 합니다. 새정부의 산업과 통상 업무가 15년 만에 다시 합쳐진 데는 “기업의 통상환경 개선과 통상교섭의 전문성 강화(김용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가 표면적 이유였습니다. 물밑에는 실물경제 전문가가 통상 업무를 맡아 대외협상이 국내경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지고 대내협상 능력도 제고하겠다는 복합적인 판단이 깔려 있었다죠.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그해 3월 말 현판식을 마치자마자 착수한 게 ‘신통상로드맵’ 수립 작업입니다. 최경림 당시 통상차관보는 같은 해 6월 “그간의 통상교섭 중심에서 ‘산업과 통상의 연계 강화’로 통상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통합시장과 미국 주도 환태평양 통합시장을 연결하는 핵심축(linchpin)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2014년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관합동 무역장벽협의회 전신 격인 비관세장벽협의회 등이 설치된 것도 신통상로드맵에 따른 것이라죠.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4월에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신흥시장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내용을 담은 신통상전략을 내놨습니다. G2와의 통상관계 재정립 및 신북방‧남방 중심 수출다변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전향적 접근, 디지털 통상 선도 등을 통해 202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 수출 강국으로 부상하겠는 비전이었습니다. ‘재수생’이란 표현을 자처한 김 전 본부장은 2017년 7월 한미 FTA 재협상에 대비해 4년 만에 부활한 통상교섭본부를 이끌면서 조직이 나아가야 할 나침반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윤석열 정부의 신통상전략은 박근혜(1년차)·문재인(2년차) 정부와 달리 3년차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초 2022년 9월 발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이 2022년 8월 발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늑장 대응 논란이 터지면서 밀리더니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시간은 오히려 약이 되었습니다. 2년동안 공과를 복기하고 앞으로 최대 현안이 될 올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책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정 본부장은 “민주·공화 어느 진영에서 당선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쨌든 미국과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가져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영 중립적인 아웃리치(대외 접촉) 활동을 해야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미국 내에서 민간 기업들의 비중도 커졌기 때문에 민관이 함께 아웃리치를 함으로써 시너지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한미일 반도체 수출통제 삼각공조 방안에 대해서는 “특정국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통상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응수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국제적으로 관할하는 바세나르 체제에 가입이 돼 있고 참가국으로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새로이 통제해야 할 품목을 논의하면서 각국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수출통제를 추가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본부장은 크게 중국, 아세안, 인도 및 주변국, 중동, 아세안, 남미, 아프리카 등 6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과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가 전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37%에 달한다죠. 그는 “이들과 일단은 대화 채널을 이제 공식화해야 한다”면서 “대부분 무역통상 인프라가 약하기 때문에 나라별로 적합한 형태의 협정 체계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공급망 등 경제안보에 대한 고민도 드러냈습니다. “공급망 단절은 사실 예상하기 어려운 정치적 결정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급작스레 나타나 사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수입선 다변화와 필요시 긴급 조달할 수 있는 소위 공급망 협력 국가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통상 조직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신통상전략에 포함됐다죠.
한편 정 본부장이 공저자로 참여한 전문서적 ‘경제안보와 수출통제’ 개정판은 지난달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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