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가 사흘 만에 번복했다. 대책 발표 직후 소비자 편익이나 선택권을 외면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거세게 쏟아지자 사실상 없던 일로 한 것이다. 국무총리 주재로 14개 부처가 스무 차례 이상 회의를 거쳐 마련했다고 하지만 3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졸속으로 이뤄진 정책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의 국내 유통시장 침공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에 못 이겨 정부가 나섰지만 헛발질만 한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알테쉬를 앞세워 해외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단계적으로 내놓고 있다. 최근 밝힌 전자상거래 수출 촉진을 위한 재정 지원 방안이 대표적이다. 중국 신경보·차이나데일리 등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24일 리창 총리 주재로 상무회의를 열어 ‘국경 간 전자상거래 및 해외 물류 창고 건설 촉진에 대한 의견’을 승인했다. 국경을 넘는 전자상거래에 참여하는 기업을 더 많이 육성하고 전통적인 무역 기업이 전자상거래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재정 지원을 늘려 관련 인프라 및 물류 시스템 구축을 강화하고 감독·서비스도 최적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을 점령하는 알테쉬의 등에 중국 정부가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물론 제2, 제3의 알리·테무가 등장할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미 지난해 테무의 휴대폰 앱 다운로드 건수는 3억 3700만 건, 쉬인은 2억 6194만 건으로 아마존(1억 8812만 건)을 앞질렀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알리와 테무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올해 4월 기준 MAU는 각각 858만 명, 823만 명으로 전월보다 소폭 줄었지만 11번가·G마켓을 제치고 1위 쿠팡에 이어 2·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 틱톡까지 한국에서 틱톡샵을 운영하기 위해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섰다.
C커머스는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중국산 공산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조악한 품질과 유해 물질 검출 등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또 진출 국가의 유통시장 및 입점 업체, 중소 제조 업계의 생태계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지 유통 업체들의 경우 중국 제품을 수입할 때 관세와 부가세, 인증 비용 등을 부담하지만 C커머스는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다 보니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달러트리의 경우 올해 매출액이 14%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상반기 약 600개의 매장 문을 닫고 향후 수년간 370개를 추가로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e커머스 1위 업체인 쿠팡마저 C커머스발 위기를 경계하고 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이달 초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새로운 중국 커머스 업체의 한국 시장 진출은 업계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과 소비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빠르게 다른 쇼핑 옵션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창사 31년 만에 첫 희망퇴직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테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저가 공세에 밀려 국내 중소 제조 업체의 32.9%가 매출이 감소했다는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부터 C커머스로 인해 국내 유통시장 및 중소 제조 업계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정부가 e커머스를 산업으로 대하고 육성시키기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해외 직구 금지 추진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유통산업 발전을 위한 보다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헛발질하는 동안 C커머스의 국내 시장 잠식이 더 가속화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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