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과의 강력한 반도체 동맹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을 활용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다. AI칩 대전에서 한국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황 CEO는 2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 NTC센터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에서 “대만과 우리의 파트너십이 세계의 AI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TSMC가 없었다면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들이 AI를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 CEO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엔비디아의 수장이다. 그가 대만 반도체 생태계, TSMC와의 파트너십을 수차례 언급한 것은 대만이 엔비디아의 주요한 공급망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TSMC에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 고대역폭메모리(HBM)을 한데 묶은 AI 가속기 생산을 맡긴다. 현재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세계 최고의 빅테크 회사들로부터 AI 가속기 공급을 당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와 TSMC 연합군이 AI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 출신인 황 CEO는 올해 컴퓨텍스 행사에 앞서 유독 대만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모리스 창 TSMC 창립자와 타이베이의 야시장에 함께 가서 반도체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가 하면 지난달 26일 입국해 이달 7일까지 2주 동안 대만에 머무르면서 현지 시장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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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이후 대만에서 매년 열리는 정보기술(IT) 전시회인 컴퓨텍스는 명목상 미국 CES, 독일 가전전시회(IFA) 등에 이어 세계 5대 전시회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한동안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대만 난야 등 토종 반도체 업체들이 사실상 몰락하면서 전자 업계에서 대만의 위상이 낮아지자 시장의 관심도 함께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일(현지 시간) 대만 현지에서 지켜본 현지 전자 업계의 열기는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였다. IT 업계의 제왕으로 떠오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지난달 29일 황 CEO와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차이밍제 미디어텍 회장 등 대만 반도체를 주름잡고 있는 ‘반도체 슈퍼스타’들이 타이베이의 닝샤 야시장에 등장하자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들은 현장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등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현재 반도체,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의 중심지가 대만이 됐음을 보여줬다.
이 같은 자신감은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에서도 이어졌다. 황 CEO는 “AI 칩 주도권은 여전히 엔비디아가 쥐고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챗GPT 등 생성형 AI 서비스가 화두가 된 후 세계 반도체 트렌드를 주름잡는 회사로 우뚝 섰다.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연산에 적합한 반도체 칩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빅테크’들이 AI 사업 진출을 위해 이 회사의 GPU를 대량 구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GPU 호조로 1분기에 169억 900만 달러(약 23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지난해 동기보다 690%나 급등한 실적을 기록했다.
황 CEO가 이번 기조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내용 역시 GPU다. 그는 올 3월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회의인 ‘GTC’에서도 발표한 적 있는 최첨단 칩 ‘블랙웰’을 뛰어넘는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코드명은 ‘루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6세대 HBM(HBM4)를 최대 12개 장착하는 이 GPU를 2026년에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는 힌트를 줬다.
그는 회사의 현존 최상위 GPU인 블랙웰의 성능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블랙웰은 이미 AI 기업들이 블랙웰의 출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황 CEO는 “차세대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AI라는 새 상품을 생산하는 엔비디아는 다음 성장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며 “신제품 블랙웰이 본격 제조 중으로 이번 분기 출하되기 시작해 다음 분기에는 생산량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AI 반도체 흐름을 엔비디아가 주도하게 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 역시 황 CEO의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움직임과 메시지를 예의주시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위해 분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HBM과 함께 저전력 D램인 LPDDR D램의 활용도에도 주목했다. 블랙웰과 함께 AI 연산을 제어하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에는 HBM이 아닌 LPDDR 메모리가 주변에 탑재된다. 적은 전력으로도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어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고민하는 과도한 전력 사용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황 CEO는 “LPDDR은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메모리로 많은 전력을 절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또 다른 무서운 점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챔피언인 TSMC의 존재다. TSMC는 올해 컴퓨텍스에서 대대적인 공장 증설 계획을 공개했다. 중국시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TSMC는 올해 공장 7개를 추가로 건설한다고 이번 행사에서 발표했다. 반도체를 직접 생산해내는 팹은 3곳이고 패키징 공장은 대만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2곳씩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와 같은 첨단 패키지 공정을 앞세워 애플·엔비디아 등 빅테크 물량을 싹쓸이 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만이 한국을 이미 앞질러 한국이 미국, 대만에 이은 3등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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