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내수를 뒷받침할 정책 수단이 마땅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출은 이미 상반기에 예산을 60% 이상 당겨 썼다. 재정 적자와 세수 결손도 걸림돌이다. 통화정책 역시 심상찮은 부동산 가격과 가계대출 증가에 운신의 폭이 좁다. 환율 리스크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형국이다. 재정과 통화정책, 양대 수단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 상반기에 357조 5000억 원의 재정을 집행했다. 정부는 올 해 총 561조 8000억 원을 쓸 계획인데 이 중 63.6%를 1~6월에 쓴 것이다. 하반기에 쓸 ‘실탄’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더욱이 재정 건전성도 좋지 않은 실정이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 1~5월까지 74조 4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급 세수 결손이 있었던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도 적자가 21조 9000억 원 늘었다. 국가채무 또한 5월 기준 1146조 8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법인세를 중심으로 세수 결손이 큰 상태라 추가경정예산을 짜기도 어렵다.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10조 원대의 ‘세수 펑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통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역시 반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을 동원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정부가 통화정책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로 보인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한 방송에 출연해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며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부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통화 당국도 고민이 깊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긴 장마에 7월 물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 있다고 밝힌 데다 부동산 가격도 계속 뛰고 있다. 7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3% 상승해 18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가계대출 역시 걸림돌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자극 없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대출을 먼저 조인 뒤 나서야 하는데 금융 당국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시기를 7월에서 9월로 2개월 늦췄다.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목적이었지만 부동산 시장 매수심리를 밀어올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당국은 뒤늦게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하도록 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이미 실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홍경식 국제금융센터 부원장은 “국토교통부 쪽에서는 신생아 특례론 같은 부동산 부양책을 쓰고 있고 금융위원회와 한은은 부채가 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내수도 부양해야 하고 집값만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판단 또한 비슷하다. 내수와 경기 상황을 보면 금리 인하를 위한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고 보면서도 당장 한은이 8월 인하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경제정책의 손발이 완전히 묶인 것이다. 기태의 신영증권 연구원은 “DSR 시행이 9월로 연기됐기 때문에 한은이 8월에 금리를 인하하는 게 흐름에 맞지 않아 보인다”며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 흐름이 이어져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한 상황이라 시장을 관망한 뒤 10월에나 인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만 놓고 봐도 당장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준금리 동결이 지속되면 내수 침체는 더 심각해지고 중소기업 경영난은 심화할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경기 회복세 자체가 꺾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분기 경제성장률을 봐도 건설투자(-1.1%), 민간소비(-0.2%) 등 내수 부문에서 성장률 부진이 두드러졌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금리 여파로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금리를 인하하거나 재정을 풀지 않으면 내수는 더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내수를 중심으로 위축된 만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 이라며 “어렵지만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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