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과’부터 우유 값, 배달 수수료까지 올 들어 정부가 기업들에 직간접적으로 가격 인상 자제나 인하를 요구한 횟수가 67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높은 물가를 적정 수준에서 안정화할 필요는 있지만 가격 개입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가격 개입이 본격화한 올 1월 말부터 현재까지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 등이 1주일에 2.48회꼴로 업계에 물가 안정 협조 요청을 했다.
정부의 요구는 농수산물과 유통업, 외식업, 정유업, 배달 플랫폼까지 전방위로 이뤄졌다. 농식품부의 개입이 32회로 가장 많았고 산업부 11회, 기재부 9회, 해수부가 4회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공정위는 11차례에 걸쳐 실태 조사나 담합 조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물가 관리에 나섰다.
부처의 개입은 소비자물가 상승 전후에 집중돼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6일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으나 밀가루·식용유 등 식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1월에 2.8%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에 3.1%를 기록하며 다시 3%대로 높아졌다는 통계청 조사가 발표된 날이었다. 1주일 뒤인 3월 13일, 농식품부는 CJ제일제당·대한제분 등 19개 주요 식품 기업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공정위도 담합 발생 가능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섰다. 간담회를 한 지 하루도 채 안 돼 빅3 제분 업체인 CJ제일제당이 밀가루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농식품부는 2월 김가격 폭등에 김밥 프랜차이즈 업체 김가네를 찾아 전사적인 원가 절감을 당부했다. 그 뒤 가격 압박을 받은 김가네를 제외한 바르다김선생과 마녀김밥·뚱채 등이 김밥 가격을 인상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공기업에 공공요금 인상 유예 △정유사·주유소에 휘발유 가격 안정 △대형마트에 할인 행사 요청 등을 수시로 했다. 올 들어 사과와 배 등 농산물 가격이 치솟자 수시로 대형마트들을 불러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마트 자체의 할인 행사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식이다. 산업부는 지난달까지 총 7회에 걸쳐 주유소 현장 점검을 하고 석유시장 점검 회의를 열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문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월 2.9%, 5월 2.7%, 6월 2.4% 등으로 떨어진 뒤에도 정부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6월 초 낙농 업계에 물가 안정을 당부했고 결국 흰 우유 원료 가격은 동결됐다. 올 초부터 공정위 현장 조사와 농식품부·기재부 압박을 전방위로 받은 삼양사·CJ제일제당 등은 지난달 1일부터 기업용 설탕 제품 가격을 평균 4% 인하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가격 개입이 시장을 왜곡시킨다고 입을 모은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해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며 “경영 압박에 고용이 악화하거나 (가격이 떨어져) 되레 소비가 줄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억누른 데 따른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 피자알볼로는 1년 새 2배 늘어난 영업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5월 초 일부 품목 제품 가격을 1000원씩 올렸다. 송 장관이 피자알볼로 본점을 방문한 지 45일 만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은 가격 동결 압박이 느슨해지는 순간 지금까지 못 올려 손해를 본 것까지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릴 것”이라며 “한국은행은 정부가 관리한 소비자물가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는데 섣불리 내렸다가 물가가 다시 뛰면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