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제9호스팩이 공모액 60억 원짜리 소형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로서는 이례적으로 증권 신고서를 세 차례나 정정하며 기업공개(IPO)에 난항을 겪고 있다. 스팩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법무법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자 최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놓고 금융 당국이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키움제9호스팩은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 시작일을 하루 앞둔 이달 12일 정정 신고서를 제출, 공모주 청약 일정을 이달 19~20일에서 다음 달 9~10일로 미뤘다. 키움제9호스팩은 6월 10일 최초 신고서 제출 이후 이번까지 세 차례 신고서를 정정했고 이에 따라 공모 일정은 최초 신고서 대비 약 두 달 밀리게 됐다.
스팩은 기업 인수합병(M&A)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명목상 회사다. 비상장회사와의 합병 과정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아 ‘껍데기’ 격인 스팩 그 자체로는 상장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키움제9호스팩의 특이점은 발기인으로 법무법인 올흔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기업 자문 서비스를 주로 제공해온 올흔이 이번에는 스팩 발기인으로 키움제9호스팩 지분 92.6%를 보유하고 있다. 법무법인이 스팩 발기인을 맡은 것은 2009년 제도 도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스팩 발기인은 스팩의 초기 자금을 지불하고 피합병 기업을 탐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때문에 주로 벤처캐피털(VC)이나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개인들이 스팩 발기인을 맡아왔다.
키움제9호스팩의 공모 일정이 늦어지는 것은 법무법인이 최대주주이자 발기인으로서 스팩 상장에 참여할 수 있느냐를 놓고 금감원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해 일정 연기를 요청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변호사법 제38조(겸직 제한) 제2항에 따르면 변호사는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으면 영리 행위가 가능하지만 법무법인은 해당 규정을 준용받지 않는다.
김호경 올흔 대표 변호사의 겸직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올흔이 키움제9호스팩의 발기인이 될 수 있느냐를 놓고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앞서 2020년 한 법무법인이 휴게 음식점 영업을 위해 겸직 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헌법재판소가 기각했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리 활동 부문이 쟁점인 것은 맞다”며 “대한변호사협회 등을 통해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상장 주관사인 키움증권(039490)은 신고서에서 “변호사법에서 법무법인이 자회사로 주식회사를 설립하거나 주주로 참여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올흔의 출자는 적법하며 법령상 제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변협이 2022년 법무법인이 보유한 자산의 운용 수단으로 법인 업무와 무관한 상장된 주식에 투자히는 행위에 대해 변호사법상 제약이 없다고 밝힌 만큼 이번 키움제9호스팩에 대한 출자 역시 법무법인의 자산 운용 방법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키움제9호스팩의 상장이 발기인 다양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향후 법무법인들이 대거 스팩 상장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스팩 합병을 통한 증시 입성 건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시장 참여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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