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티몬·위메프는 2010년 설립된 동갑내기 기업이다. 2008년 미국에서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이 엄청난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도 이를 모방해 탄생한 게 이들이다. 짧은 시간 동안 파격적 할인액을 제시해 공동 구매자를 모아 ‘딜’을 성사시키는 소셜커머스는 당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았다. 스마트폰 보급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중화 시기와 맞물려 SNS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이 위력을 발휘하며 3년 만에 각 업체가 연간 거래액 1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들 중 쿠팡이 2014년 아마존 모델을 도입해 직매입한 제품을 자체적으로 배송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면 티몬과 위메프는 기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픈마켓(소비자·판매자 간 거래를 중개하는 e커머스) 사업을 이어가다가 싱가포르 기반의 큐텐에 인수됐다. 큐텐은 국내 1세대 e커머스 업체인 G마켓을 창업한 구영배 대표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회사다. 구 대표는 G마켓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한국에서 10년간 경업 금지를 약속해 큐텐을 통해 동남아 시장에서 사업을 했다. 이후 경업 금지가 풀리면서 2022년부터 국내에서 티몬·인터파크커머스·위메프·AK몰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구 대표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에 견줄 수 있는 글로벌 디지털 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며 올해 2월 북미 기반의 쇼핑 플랫폼 위시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외연 확장에 집착한 그는 큐텐을 통해 문어발식 인수에 나서는 한편 판매 대금을 돌려 막고 이를 인수 자금 등에 유용하면서 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낳았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총 4만 8000여 개 업체가 1조 3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소비자 피해도 막심하다. 티몬·위메프에서 여행·숙박·항공권을 환불받지 못하고 한국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소비자가 9000명이 넘는다.
‘대국민 사기극’ ‘폰지 사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의 원인을 일각에서는 e커머스에 대한 판매 대금 정산 규제 미비나 에스크로(결제 대금 예치) 제도의 부재에서 찾는다. 하지만 외형 확대의 유혹에 규제 공백 상태를 악용한 구 대표의 경영 실패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는 글로벌 디지털 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적자투성이의 부실 기업을 현금 한 푼 없이 인수한 후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대규모 투자는커녕 대금 정산 시기를 연장해 판매자 돈을 무이자로 쓰고 자금 돌려막기 창구로 이용했다.
티몬·위메프와 함께 소셜커머스 3대장으로 불리던 쿠팡은 이와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쿠팡은 일찌감치 진로를 변경한 후 6조 2000억 원을 물류망 구축에 투입해 로켓배송 서비스를 구축함으로써 한국의 물류 시스템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매출액 31조 원을 달성해 기존 1위 오프라인 유통 강자 이마트(29조 원)를 넘어서며 유통 업계 왕좌에 올랐다. 쿠팡은 2022년 3분기 처음으로 영업 흑자를 기록한 후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도 영업 흑자 6174억 원을 올렸다. 창립 후 2022년까지 무려 13년간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과감하게 투자를 지속한 것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결국 쿠팡과 티몬·위메프는 김 의장과 구 대표가 얼마나 초심을 잃지 않고 기업가정신을 지켜냈는지 여부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다고 봐야 한다. 구 대표가 한때 e커머스 성공 신화로 칭송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가 터진 지 1주일이 지나서야 사재를 출연해 수습하겠다더니 돌연 법원에 두 기업의 회생을 신청했다. 이후 티몬·위메프를 합병하고 미정산 판매자들이 대주주인 공공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허황된 방안을 내놓고는 시간만 끄는 중이다. 기업가의 잘못된 판단과 무책임, 과도한 욕심은 언제든 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 비단 티몬·위메프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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