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오오오(무! 적! L! G!) 승리의~ 함성을~ 다같이~ 외쳐라.”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정안순(65) 씨는 “가까이 살면서도 야구 직관은 처음 해봤다”며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하다 보니 아픈 것도 잊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류머티즘관절염은 정 씨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류머티즘관절염은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가 손·발가락, 손·발목, 무릎 등 신체의 여러 관절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세균·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에 대항하는 림프구가 신체 일부를 외부 물질로 오인해 공격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쓴 관절이 닳아 생기는 퇴행성관절염과 달리 중·장년층 여성에게 잘 발생하고 드물게는 소아에게도 발병한다. 그나마 정 씨는 40대에 진단돼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뼈 손상 등 심각한 합병증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쉽게 피곤해지고 관절이 붓거나 아픈 증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질환의 특성상 야외 활동에 대한 부담이 컸다고 한다.
정 씨를 난생 처음 야구 경기장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대한류마티스학회 의료진이다. 류머티즘관절염은 발병 후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문제는 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노인들은 관절이 뻣뻣하고 아프면 대부분 나이 탓이려니 하고 넘긴다. 반대로 나이가 어리면 ‘설마 관절염이겠나’ 하고 생각하거나 성장통으로 오인해 진단을 놓치기 쉽다. 류마티스학회는 이러한 류머티즘 질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03년부터 ‘골드링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류머티즘관절염 환자들은 손가락이 붓고 통증이 심해 반지를 끼기 어렵다. 골드링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받으면 소중한 반지를 다시 낄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상징이다.
차훈석 류마티스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은 “기록적인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반인보다 활동량이 줄어들기 쉬운 류머티즘 질환 환자들을 격려하고 ‘스포츠’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의료진과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질환 정보를 제공하던 카카오톡 채널과 경인 지역 류마티스내과 전문의들이 근무하는 병원에 포스터를 붙여 신청을 받았는데 호응이 너무 좋아 부득이하게 추첨을 통해 관람자를 선정했다”고 귀띔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류머티즘관절염으로 병의원을 찾은 환자는 25만 명이 넘는다. 보통 평생 약물 치료가 필요한데 증상 악화로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 학회가 행사 당일 홈런 1개당 100만 원을 적립해 어려운 환자들을 돕겠다고 나선 건 이런 배경에서다. 의료진의 진심이 통한 걸까. 이날 LG트윈스 외야석에 마련된 학회 지정석은 류머티즘 질환 환자와 가족, 의료진 등 500여 명으로 빼곡히 찼다. 이명수 류마티스학회 홍보이사(원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막간을 이용해 진행한 류머티즘 질환 관련 퀴즈 이벤트는 본경기 못지않은 호응을 얻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준 의료진에 고맙다”며 “병 때문에 움츠러들기보다 즐거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겠다”고 입을 모았다. 차 이사장은 “환자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손가락 관절을 볼 때면 건강한 일상을 되찾아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참석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소통의 중요성을 되새겼다”며 “류머티즘 질환 환자들이 충분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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