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문이 열려 있으면 뭐합니까.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전문진료가 가능한 부서로 환자를 뿌려주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수술, 시술 등 이른바 '배후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받으려면 전문진료과의 여력이 돼야 한다는 얘기죠. "
서울 한 대형병원의 바이탈과 전문의는 "전공의 공백이 6개월을 넘어가면서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온 전문의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최근 논란이 되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겠다며 연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배후 진료'의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응급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의료인력이 없어 응급실 진료가 가로막히는 사례는 연일 증가하고 있다.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 표출현황'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응급실 진료 제한'는메시지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띄운 경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응급실 처치 뒤 후속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종합상황판에 표시된다.
조사 결과 의대 증원 발표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이탈한 2월부터 8월 26일까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실에 표출된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총 7만241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5만9004건 대비 1만3407건(22.7%)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 8월에 병원들이 띄운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1만610건으로 전년 동기(6971건) 대비 3639건이나 늘었다. 그 중 전문의 부재 등 의료인력 사유가 3721건(35.1%)을 차지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 대규모 이탈로 특정 진료 과목별로 배후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응급실들이 일부 질환 환자를 진료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공지한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이제 곧 돌아오는 추석 명절에는 사건·사고가 잦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더욱 늘어날 텐데,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는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 대거 사직으로 인해 응급실 운영에 일부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맞지만 붕괴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되려 고질적으로 이어져 온 응급의료 현장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의료개혁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현재 응급의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기존 의료체계에서도 있었던 문제"라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정부가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공백이 6개월 이상 장기화하면서 배후 진료가 약화되고, 일부 응급현장 의료진이 이탈하는 등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며 "응급의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자체, 의료기관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철저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대본에서 정부는 지자체장을 반장으로 하는 ‘비상의료관리상황반’을 설치·운영하고,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별 1:1 전담책임관을 지정해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적시에 조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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