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와 ‘아키에이지 워’ 표절 여부를 두고 법적 분쟁 중인 엑스엘게임즈가 같은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차기작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임 업계에서 IP 분쟁이 확산하는 가운데 법원의 판단마저 늦어지면서 저작권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해지고 이용자 신뢰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엑스엘게임즈는 아키에이지의 IP를 활용한 신작 게임 ‘아키에이지 크로니클’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특허청에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이와 관련해 엑스엘게임즈의 모회사인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아키에이지의 IP를 활용한 프로젝트로 게임 형식이나 출시일정 등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공개 예정"이라며 “소송 중인 게임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은 엔씨소프트가 자사 대표작인 ‘리니지2M’을 표절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아키에이지 워’와 같은 IP를 쓰는 게임이다. 아키에이지는 국내 게임업계 1세대 개발자로 엔씨소프트의 대표작 ‘리니지’ 개발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최고창의력책임자(CCO)가 내놓은 작품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4월 카카오게임즈가 출시한 ‘아키에이지 워’에서 리니지2M의 콘텐츠·시스템을 다수 모방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업계 저작권 소송에서 주로 원고로 등장한다. 리니지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사성을 띈 게임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2021년 6월 웹젠의 ‘R2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지난해 8월 승소했다. 올 2월에는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한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롬(ROM)’이 ‘리니지W’를 모방했다며 소송을 냈다.
최근 들어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표절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PC게임 ‘다크 앤 다커’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넥슨은 퇴직 개발자들이 설립한 개발사 아이언메이스의 다크 앤 다커가 자사의 신작 프로젝트였던 P3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법적 공방 중이다. 이와 관련한 1심 판결이 다음 달 24일 나올 예정인 가운데, 다크 앤 다커 IP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크래프톤은 해당 게임의 모바일 버전을 개발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포켓몬스터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닌텐도로부터 소송을 당한 일본 개발사 포켓페어의 ‘팰월드’ IP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 중이다.
업계에서는 게임 업계의 저작권 보호 인식이 지나치게 낮은 데다 법원의 판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다보니 표절 관행이 만연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 중에 동일 IP로 후속작 개발에 착수하는 것은 개발 윤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문화 산업계와 달리 게임 업계에서는 유독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꼬집었다.
국산 게임이 문화 콘텐츠 분야의 새로운 ‘킬러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IP 저작권에 대한 낮은 인식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발 비용 회수 등의 이유로 업계 차원의 자발적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법원의 엄정한 판단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신진 홍익대 게임학부 교수는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패널티를 더욱 강하게 줘 ‘카피캣’에 대한 두려움을 높여야 한다”며 “게임 산업이 고도화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IP 저작권 문제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