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고수해오던 고려아연(010130)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단기 자금시장에서 2000억 원을 조달했다. 회사는 운영자금 목적이라는 입장이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선제적 자금 확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영풍(000670) 역시 MBK파트너스에 3000억 원을 지원키로 해 경영권을 두고 본격 대결에 들어갔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날 총 2000억 원의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CP 신용등급은 단기 신용등급 중 가장 높은 ‘A1’으로 평가됐다. 만기는 6개월이다.
고려아연이 금융기관 여신이 아닌 시장성 조달을 추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오랜 세월 무차입 경영을 유지해온 데다 현금성 자산도 풍부한 때문이다. 최근 고려아연은 2002년 이후 약 12년 만에 국내 신용평가사로부터 장기 신용등급(AA+)과 단기 신용등급 평정을 받았는데 이번 조달을 기점으로 시장성 조달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CP 할인기관으로는 한국투자증권이 이름을 올렸다. 할인기관은 기업이 발행한 CP를 다른 기관투자가나 개인에게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에 맞서 한국투자증권이 고려아연의 ‘백기사’로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투자증권이 고려아연의 자금 조달 파트너로 나타났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CP 발행이 영풍·MBK파트너스의 지분 공개매수에 맞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실탄의 성격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고려아연 측은 단기 차입금 차환을 위한 CP 발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영권 분쟁은 다음 달 4일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 종료 이후 승패가 가려질 전망이다. MBK파트너스 측이 공개매수신고서를 정정해 매수 가격을 조정해 당국에 제출하면 그날부터 10일이 경과한 날로 종료일이 뒤로 밀린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약 2조 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7~14.6%를 주당 66만 원에 공개매수한 뒤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고려아연 주가가 이날도 70만 원을 웃돌며 최초 제시한 매입 가격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공개매수가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영풍은 이날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회사(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3000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공개매수 인상에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조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여 목적에는 ‘공개매수 결제자금 조달’이 명시됐다. 대여 기간은 이날부터 내년 9월 2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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