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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고재 하회' 시간을 거슬러, 풍류에 취하다

■전통을 짓는 '락고재 하회' 이달 말 오픈

하회마을과 동일하게 22동 객실 배치

부용정·관람정 등 창덕궁 조형미 더해

대문엔 '열녀문'·머리맡엔 '고려청자'

고미술품과 하룻밤·사당서 제사 체험

"고풍스러운 한옥서 풍류 즐기며 힐링"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슈페리어룸. 객실에서 붓받침대(필가) 모양의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초입에 한옥 20여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제일 안쪽에 위치한 한옥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붓받침대(필가) 모양으로 줄지어 선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과거를 준비하는 자녀의 방을 필가 모양의 봉우리나 붓 끝을 닮은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뒀다. 산의 정기를 받아 합격하라는 의미에서다. 한옥을 찾는 이들은 이 같은 풍경을 보며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기운을 받아가기를 기대해볼 수 있다.

바로 15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달 말 정식 오픈을 앞둔 한옥 호텔 ‘락고재 하회’다. 락고재 하회는 단순히 목재로 만들어 기와를 얹은 한옥과는 차별화를 선언한 한옥 호텔이다. 호텔이 위치한 지리적 입지부터 각각의 방까지 모두 한국 전통문화가 깃들어진 곳으로 ‘찐’ 한옥 호텔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한옥 호텔이나 한옥 리조트와 비교해 차별화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자부하는 이유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앞에 석상들이 설치돼 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에는 창덕궁 관람정을 본떠 만든 쉼터가 있다. 투숙객이 연못을 보며 쉬어갈 수 있다.


◇호텔이 된 문화재, 문화재가 된 호텔=락고재 하회는 안동 하회마을 초입에 1만 6529㎥(5000평) 규모 22동 20객실로 조성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존재하는 호텔이다. 락고재 측은 “15년 전에는 문화재보호구역의 기준이 하회마을 안쪽이어서 지금의 부지를 사 호텔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며 “이후 문화재보호구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호텔도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통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을 코앞에 둔 덕에 락고재 하회 역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한옥 객실을 하회마을과 동일하게 배치한 게 대표적이다. 가장 먼 객실은 락고재 하회의 로비동에서 150m가량 떨어졌다. 수도권의 다른 한옥 호텔들이 회랑(지붕이 있는 복도)을 중심으로 좌우로 객실을 배치한 것과 대조적이다.

락고재 하회는 여기에 서울 창덕궁의 미를 더했다. 창덕궁의 부용정·관람정·애련정·낙선재 등을 본떠 곳곳에 배치했다. 락고재 측은 “창덕궁은 5대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궁궐로 조형미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하회마을을 관람하고 온 투숙객이 락고재 하회에 머무르면서 추가로 더 볼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덕궁을 실측해 5채를 지었다”고 언급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침대 위에 고미술 작품이 걸려 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객실 내 투숙객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달항아리와 상이 놓여 있다.


◇대문에는 열녀문, 머리맡에는 고려청자=락고재 하회는 외관과 전경 외에도 객실마다 전통의 의미를 담아 설계된 게 특징이다. 필사봉을 볼 수 있는 슈페리어룸 외에도 신혼부부를 겨냥한 ‘부용정’ 객실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두꺼비와 거북이 석상을 배치했다. VIP동은 창덕궁의 후원 낙선재와 연경당을 본떠 지은 곳으로 사대부 집안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VIP동의 대문에는 전주 이씨의 열녀문이, 마당에는 순조의 자녀가 생활하던 공간에 있던 수석 3점이 놓여 있다.

객실 내부에는 도기·백자·청자 등 고미술품이 가득하다. 슈페리어룸의 경우 12~13세기 고려청자, 14세기 고려흑유가 방을 장식하고 있다. 화장실 비누받침대는 19세기 제기(祭器)를 활용했다. 투숙객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로 직행하기보다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호텔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고미술품은 파손 및 분실의 위험도 크다. 락고재 측은 “고미술품이 한 개라도 없어지면 그 방은 사실 헛장사한 셈”이라면서도 “박물관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고미술품을 접하는 게 아니라 생활하면서 만져보고 즐길 수 있게 연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저녁이 되자 락고재 하회의 한옥에 조명이 켜지면서 연못에 반사되고 있다.


락고재 하회는 하룻밤 묵으며 한국의 전통을 경험하려는 내·외국인을 겨냥해 다양한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내국인에게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는 서비스가 내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내·외국인을 위한 찜질방과 황톳길 맨발 걷기도 운영한다. 특히 하회마을을 거쳐 이곳에 숙박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을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객실 미니바에 신라면 컵라면과 마스크팩도 무료로 제공한다.

올해 전국에 한옥체험업으로 등록된 곳만 2754곳으로 2019년에 비해 56% 증가했다. 하지만 이름만 ‘한옥’인 곳들과 달리 락고재는 가장 전통적이면서 고급스러운 한옥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락고재 측은 “제사 서비스에 쓰는 제기도 모두 14세기 제품들”이라며 “스위트급 객실에는 방 안에 아궁이를 설치해 투숙객은 겨울철 장작불을 펴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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