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금융 대출이 좀처럼 줄지 않는 까닭은 금융 당국의 통제 범위 밖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창구 지도’를 통해 은행 자체 상품 대출은 바짝 조일 수 있었지만 정책 상품 대출은 차주가 일정 소득 요건만 맞추면 집행하도록 설계돼 당국이 독자적으로 손쓸 방도가 없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디딤돌·버팀목·보금자리론 등 부동산 정책금융 상품은 소득 수준, 구매 대상 부동산 등이 일정 조건에 맞으면 대출이 가능하다. 금리 인상, 대출 대상 축소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민간 대출 상품과 달리 이렇다 할 제한이 없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금융 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두 달 전 디딤돌 대출금리를 0.4%포인트 인상했지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금리를 높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한 정책 수단이지만 소득 수준을 높여 지원 대상을 축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금융 상품의 특성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키를 쥔 국토교통부가 서민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추가 대출 조건 변경을 꺼리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매달 2조 원을 웃도는 정책대출 자금이 시장에 지속해서 투입되면 연쇄 매매가 일어나 전체 대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외곽에서 시작해 서울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로 이어지는 ‘주택 갈아타기’의 마중물로 정책금융 대출 상품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금융 당국이 나서 은행권의 자체 대출 취급을 극도로 제한하며 파급효과를 억누르고 있지만 이 같은 ‘비상조치’를 지속해서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책상품 대출은 은행권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국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이내로 낮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연말까지 매달 가계부채 순증액을 5조 5000억 원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금융 대출이 지금처럼 매달 2조 원가량 늘어난다면 은행권은 자체 상품 관리 한도를 월 3조 5000억 원 아래로까지 낮춰야 한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은 “정책 상품 대출은 은행이 차주를 선별해 대출을 내줄 수 없다”면서 “그런데도 은행 대출 실적으로 잡히다 보니 전체 대출액을 관리하는 데 까다로운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아예 부동산 정책금융 대출 집행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자격 요건만 맞으면 대출이 집행되는 방식을 바꿔 월별로 정책 상품 대출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판매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고삐 풀린 정책 상품 대출을 이대로 둔 채로는 가계대출 관리가 쉽지 않다 보니 이 같은 고육책이라도 꺼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 당국은 업계 의견을 종합해 국토부 등과 정책 상품 적정 공급 규모 등을 추가로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 당국과 국토부 모두 정책대출 상품을 통해 무주택자나 취약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도 “가계대출 추이를 감안해 필요하다면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 당국은 이달 7일 주요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에게 내년 가계대출 관리 지침도 함께 전달했다. 당국은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지키되 대출을 월별로 균일하게 실행하도록 주문했다. 올해 은행들이 연초부터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려서 목표를 조기 소진하는 바람에 하반기 당국이 나서 대출을 통제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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