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인공지능(AI) 분야 연구자가 내리 수상자로 선정되자 궁극에는 AI가 인류를 뛰어넘어 노벨상을 직접 받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9일(현지 시간) 발표한 노벨화학상의 주인공은 구글 딥마인드의 AI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을 비롯해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생화학과 교수였다. 전날 노벨물리학상에도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이 가능하도록 초석을 쌓은 존 홉필드 교수와 제프리 힌턴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아직까지는 AI보다는 AI를 개발하고 설계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시대다.
노벨위원회 규정상으로도 생존 인물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사람이 아닌 AI는 현재 후보 대상도 될 수 없다. 생전에 다섯 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수상이 유력했지만 수상자 선정 이틀 전 사망하자 그해 노벨위원회는 평화상 수상자를 뽑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즉 사람이더라도 생존해야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AI가 직접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요원하다는 의견이 그간 지배적이었으나 올해 노벨상 결과를 계기로 머지않아 관행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기초과학 성과에 무게를 두고 수상자를 선정했던 노벨위원회가 응용과학인 AI 분야의 연구자를 잇따라 선택한 것 자체가 AI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AI는 5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학적 난제를 풀 만큼 파괴적”이라며 그 영향을 설명했다. 조동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도 “노벨상은 인류에게 크게 기여한 연구에 주어지는 상인 만큼 산업 기반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면 높은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노벨위원회가) AI의 시작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물리학자인 홉필드 교수까지 다다를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AI 분야의 노벨상 선정은 이변에 가깝다. 허사비스가 세운 영국 AI 회사 딥마인드(2014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인수)의 AI ‘알파폴드’에 대한 성과를 두고서도 과학·공학계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즉 노벨화학상 수상자로는 딥마인드 소속 연구자들이 선정됐지만 실제 수상의 대상이 된 연구 성과는 딥마인드의 AI 알파폴드가 스스로 학습하고 생산한 내용이었다. AI가 수행한 연구 성과로 지난해에는 ‘예비 노벨상’으로 불리는 래스커상도 수상했다. 이미 노벨위원회도 AI의 연구 성과를 인정한 마당에 AI가 수행한 성과가 누구에게 귀속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2021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래 전망 기사를 통해 2036년 AI가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 예상보다 12년이나 빨리 AI의 노벨상 직접 수상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적 난제를 AI가 해결하면서 AI가 직접 노벨상을 수상하는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보수적인 기풍을 지닌 노벨위원회가 최신 유행이라고 할 만한 AI 덕분에 불고 있는 과학계의 변화를 수용한 만큼 앞으로 또 다른 변화의 돌풍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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