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전세대출 실행 시 집주인(임대인)이 향후 전세자금을 반환할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는지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무분별한 대출을 걸러내 전세사기·깡통전세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200조 원에 육박하는 전세대출 규모를 조절하려는 의도지만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임차인 입장에서 임대인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20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자체 신용평가시스템(CSS)을 활용해 임대인이 향후 임대차 계약 종료 시 임차인에게 전세자금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지 평가한 뒤 대출을 내주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와 관련해 모든 대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한다고 한 만큼 여러 방안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등 피해 방지 목적도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 전세대출을 조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금융 당국은 최근 전세·정책대출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소득 수준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을 정교화해달라고 은행권에 요청하는 등 전세대출에 DSR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DSR을 적용할 경우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만큼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 당국이 이처럼 수요·공급 양 측면에서 규제 강화를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전세대출 규모가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은 대출 전액 보증이 가능한 데다 DSR 규제마저 적용되지 않아 ‘가계 부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전셋값이 상승하면 갭 투자가 늘면서 집값을 밀어올리는 경우가 많아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금융 당국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23조 원 규모에 불과했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6년 이후 급속도로 늘기 시작해 2019년 100조 원을 돌파했다. 2021년 말에는 180조 원을 넘어섰으며 현재는 190조 원대까지 치솟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은행권의 전방위적 대출 억제책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이와 함께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 하향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90~100%에 달하는 보증 비율을 80% 이하로 낮춰 은행들의 대출 심사를 현실화해 과도한 전세대출을 막겠다는 의도다. 금융 당국은 사실상 전세대출의 신규 공급량 총액을 결정하고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HF),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등 3대 보증 기관의 연간 공급 계획과 적정 보증 규모 등도 살펴볼 예정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임대인에 대한 신용 평가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거래 당사자가 아닌 임대인이 신용 평가에 선뜻 응할지 의문”이라며 “(임차인이 전세 대출을 받는) 은행과 거래 이력이 없을 시 신용평가에 필요한 (임대인) 정보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임대인에 대해 신용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