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코리아밸류업지수’를 공개한 지 2달 가까이 지났지만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국내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연중 최저치로 고꾸라진 상황에서 세제 혜택 등 상장사들이 바라는 인센티브가 부족해 공시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 연말 밸류업 공시 기업 위주로 지수 리밸런싱(재구성)이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한국거래소 기업 공시 채널 카인드에 따르면 밸류업지수 구성 종목 100개 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은 12곳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마저도 9월 24일 밸류업지수 발표 당시 이미 공시한 기업 7개를 제외하면 약 두 달간 신규 공시한 기업은 5곳(현대글로비스(086280)·롯데칠성(005300)·드림텍(192650)·고려아연(010130)·KT&G(033780))뿐이다.
반면 같은 기간 밸류업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 중 25곳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추가로 공시했다. 이로써 지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밸류업 공시를 진행한 기업은 32곳으로 늘어났다. 거래소가 12월 밸류업지수 리밸런싱을 예고하면서 하반기 실적 발표 시즌에 맞춰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음을 감안하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거래소는 올해가 지수 발표 첫해인 만큼 당초 매년 6월 정기 리밸런싱과 별도로 밸류업 공시 참여도를 지켜본 후 연내 특별 지수 변경을 실시하기로 했다.
거래소는 밸류업 공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편입 기업들을 대상으로 계획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업종별 담당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지난 두 달간 밸류업지수의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을뿐더러 상장사들이 바라는 세제 혜택 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밸류업지수가 처음 공개된 9월 30일 이후 이날까지 밸류업지수는 7.37%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8.79%)보다는 낙폭이 적지만 굳이 밸류업 공시를 별도로 할 유인으로 작용할 정도는 아닌 셈이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고꾸라진 점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기업들이 밸류업보다 당장 트럼프가 내세운 관세정책에 맞춰 대응책을 수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아울러 지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공시가 늦어지고 있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리스크가 해소된 내년 초 이후로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세제 혜택 등 확실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에서) 특별한 사항 없이 기업들에 밸류업 공시 독려만 하고 있다”며 “하지만 밸류업지수 편입 이후 주가도 큰 반응이 없는 데다 세제 등 뚜렷한 인센티브도 없어서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업들의 참여가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관세 부과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에 바쁘다 보니 밸류업 참여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이후 2월께 정책들이 발표되면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제거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주주총회가 열리는 3월에 밸류업 공시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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