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고 야당이 내년 예산을 4조 원 넘게 깎으면서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이 올스톱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인공지능(AI) 지원과 양자 및 차세대 원자로 연구 확대 사업 등이 가로막히면서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주요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통상정책을 수립하는 데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11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안보다 4조 1000억 원 감액된 673조 3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핵심 경제정책들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당장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지원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 인프라 시설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후 국회와 협의해왔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상향하고 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장비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하지만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방안이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인프라 지원에 최소 6300억 원, 세액공제 확대로 기대했던 4조 원 규모의 세제혜택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한다. 야당이 주도했던 AI 연구용 컴퓨팅 R&D 예산 3217억 원도 감액 예산안 통과로 미반영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자 같은 미래 성장 동력 R&D 사업 예산이 815억 원 감액된 것을 비롯해 차세대 원자로 R&D(63억 원) 등 원전 르네상스를 위한 지원 예산도 삭감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반도체·AI는 향후 20~3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핵심 분야”라며 “여야가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이들 산업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R&D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강력한 경제 컨트롤타워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야당이 국무총리를 포함한 주요 국무위원들의 탄핵을 추진 중이고 경찰도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하고 있어 자칫 정책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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