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판정부(ICC)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어피니티·IMM프라이빗에쿼티·EQT파트너스·싱가포르투자청)간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 분쟁과 관련해 30일 내로 외부기관으로부터 1주당 공정시장가격(FMV)을 정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다시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컨소시엄이 제시한 풋옵션 가격이 주당 41만원인 반면 신 회장 측은 그 절반 수준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 회장 측 법률 대리인은 중재판정 취소 등의 법적 절차도 고려한다는 입장이어서 시간 끌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ICC가 지난 19일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들이 제기한 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신 회장 측은 30일 이내로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30일 이내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이후 기간부터 하루에 20만 달러의 페널티가 부과된다.
컨소시엄 측은 지난 2018년 전문 평가기관을 선임해 주당 41만원(총 2조 122억 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통상 금융회사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을 토대로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지난 2012년 컨소시엄이 투자할 당시 교보생명의 순자산가치는 약 5조 원이었고, 현재는 13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즉, 2012년에 투자자가 주당 24만5000원에 투자한 것이 합리적이었다면 지금은 40만원이 넘는다는 게 IB업계의 해석이다.
이에 반해 신 회장 측은 지난해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사주조합과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주당 가격이 19만8000원이라는 점을 들어 주당 20만원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치가 높은 회사라고 기업설명회(IR)를 열심히 할 때와 달리 이제 스스로 가치가 낮다고 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만약 양측의 풋옵션 가격 차이가 10% 이내면 평균 가격으로 정하되, 10%보다 크면 컨소시엄은 3곳의 제3의 평가기관을 제시해야 한다. 신 회장은 이중 1곳을 선택해 그 기관이 제시한 가격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ICC 판정에서 신 회장이 되사줘야 하는 기간이 별도로 명시되지 않은 부분이다. 가격을 정하는 평가보고서를 제출한 뒤 신 회장이 버티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내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법적 소송까지 제기하면 한없이 늘어질 공산이 크다. 국제중재재판 판정은 국내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집행력을 가지려면 국내 법원의 승인과 집행 결정이 필요하다.
신 회장 측은 이번 판정을 대비해 약 1조 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주당 약 20만원의 가치를 적용한 수준의 금액이라 결정된 가격이 높아질 수록 추가 자금이 필요해진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36.7%를 담보로 새 투자자를 모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형사 소송과 함께 두 차례의 국제 중재까지 치르며 6년이 흐르면서 양측은 변호사 자문 비용에만 1000억 원 가량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로펌의 경우 컨소시엄 측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았다. 법무법인 광장에서 이번 건을 담당했던 임성우 변호사는 올 상반기 법무법인 세종으로 옮겼다가 지난달 베이커맥켄지앤KL파트너스에 합류해 신 회장 측 자문을 계속하고 있다. 광장은 중재 판정이 나오기 직전에 사임했다.
한편 컨소시엄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 2000억 원(주당 24만 5000원)에 인수했다. 당시 주주 간 계약에는 회사가 약속한 기한(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면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되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컨소시엄은 2018년 주당 41만 원(총 2조 122억 원)에 풋옵션을 행사했고 신 회장이 이를 거부해 국제 중재(2019년 3월)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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