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논의에 문을 열어 놓으면서 윤석열 정부 첫 추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연 만큼 추경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용도와 규모·시기다. 정부 안팎에서는 효용성이 낮고 나라 곳간을 축내는 나눠 먹기식 현금 살포보다는 지난해 감액 예산에 담지 못한 첨단산업과 자영업자 타깃 지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①25만 원 나눠 먹기로는 효과 떨어져…AI·양자 등 선택과 집중해야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은 국가재정법상 전쟁·재해나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이 발생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 편성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1%대 성장이 가시화하고 있고 물가는 2%를 웃돌 가능성이 있어 이대로라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준경기 침체 상황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역대 정부를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28조 40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했고 박근혜 정부는 40조 원, 문재인 정부는 146조 1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했다. 사유는 제각각이다.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 목적일 때도 있고 미세먼지 등 국민 안정과 민생경제 지원 용도의 추경도 있었다.
문제는 용처다. 더불어민주당은 추경을 이재명 대표의 지난 총선 공약인 ‘전 국민 25만 원 지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용도로 생각하고 있다. 전 국민에 현금을 지원하면 소비를 진작시켜 내수를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민생경제를 살리고 첨단산업을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는 맞서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 국민 대상 현금 지원은 소비를 새로 일으키는 것보다는 기존에 계획했던 소비를 대체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경기 침체로 타격을 입은 취약 계층에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추경은 비상계엄 이후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데 써야 한다”며 “자영업자와 취약차주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고용 유발 효과가 있는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화폐와 같이 돈을 푸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망 확충과 인공지능(AI)·양자 관련 사업 등 첨단산업 지원에 추경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②적자 국채 확대 불가피…15조~20조 원 안팎 편성해야
추경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야의 입장 차이가 크지 않다. 적정 수준으로는 15~20조 원이 거론된다. 30조 원 이상의 ‘슈퍼 추경'은 쉽지 않다. 이미 지난해 30조 원 규모의 세수결손이 예상되고 있어 적자 국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국고채 총 발행한도는 197조 6000억 원이다. 순발행 한도만 80조 원 규모다. 추경 규모만큼 적자국채는 더 늘어난다. 국채발행 증가는 시장금리 상승과 국가채무비율 상승 등의 부작용을 동반한다. 신용평가사에서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추경 규모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
이번 추경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의 여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자본시장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가 1.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골자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에 따른 영향은 내년부터 본격화해 내년 성장률은 0.25%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③지금 준비해서 3월에나 가능…하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추경의 편성 시기도 중요 포인트다. 야당은 가능한 한 빨리 편성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여당은 최소한 1분기는 올해 예산의 조기 집행 결과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전날 “지난해 일방 처리된 예산을 조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면서도 “1분기 넘어서 (추경) 필요성을 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 조짐을 고려하면 추경은 빠를수록 좋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지금 추경 준비에 나서도 3월에나 가능하다”며 “여야가 조속히 합의해 최대한 빨리 추경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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