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외펀드 배당금에 대한 세액공제 방식을 변경해 절세 계좌 내 과세 이연에 따른 복리 효과가 사라지자 대표 미국 배당 상장지수펀드(ETF) 내 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과세 이연 혜택이 사라진 데다 이중과세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일단 자금을 뺀 후 지켜보자는 투자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금융투자 업계는 정부가 지난달 해외 주식형 토털리턴(TR) ETF를 사실상 폐지한 데 이어 이번 세액공제 방식 변경으로 연금 시장 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TR ETF의 과세이연 혜택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오는 7월부터 종료하겠다는 당초 발표와 달리 이미 연초부터 종료되며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6일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정부의 해외 납부 세액에 대한 공제 방식 변경으로 논란이 발생한 후 4~5일 이틀간 미국배당다우존스의 대표 격인 4종(KODEX·TIGER·SOL·ACE)의 ETF에서 15억 원이 순유출됐다. 종전까지만 해도 매일 100억~200억 원가량 꾸준히 순매수해오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배당다우존스 ETF 중 가장 순자산이 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의 개인 순매수액은 2일 123억 7000만 원에서 5일 하루에만 52억 6000만 원 이상 순매도로 돌아섰고 ‘ACE 미국배당다우존스’는 같은 기간 26억 8000만 원에서 7억 3000만 원으로 순매수액이 70% 이상 급감했다. 4종 ETF의 지난해 개인 순매수액은 1조 6345억 원으로 전년(5510억 원) 대비 3배가량 급증했지만 올 들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올해 1월 1일부터 해외 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세액공제 방식이 투자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영향이다. 종전에는 외국에서 세금을 징수당한 후 국내 과세 관청이 외국 세금을 먼저 펀드에 환급해준 다음 투자자에게 배분할 때 국내 세율로 원천징수하는 ‘선(先)환급, 후(後)원천징수’ 방식을 택했지만 앞으로는 해외투자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에 대해 먼저 세금을 떼고 투자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즉 그동안 투자자가 실제 배당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던 과세 이연 효과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과세 이연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및 연금 계좌 등 절세 계좌에 누렸던 배당금 재투자에 따른 복리 효과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연초부터 세액공제 방식이 바뀌며 오는 7월 종료 예정이었던 해외 주식형 TR ETF의 배당 재투자도 사실상 종료됐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연금 계좌에서 더 이상 배당형 해외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졌다며 ETF를 비롯해 국내 상품에 대한 혜택이라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 주식형 ETF의 경우 매매 차익이 일반 계좌에서는 비과세로 분류되지만 연금 계좌에서는 연금소득세 대상이 되므로 현시점에서도 이에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국내외 주식형 간접투자 상품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면 정부가 최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정책도 무력화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조만간 업계 의견을 수렴해 세법 개정 내용과는 다른 쪽에서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관련 세제 개편은 과도한 혜택을 합리적으로 바꾼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중과세 논란으로 애초에 추진하던 해외 주식형 ETF 연금소득세 환급 방안도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품 과세 형평성 문제를 고려하면 국내 주식형 ETF 쪽에 연금 계좌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증시 활성화라는 명분이라도 앞세워 연금 계좌에 한국 주식 투자에 대한 혜택이라도 추가해야 한다”며 “연금 계좌에 절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을 투자자가 알게 된 이상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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