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3개월 만에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최근 대내외 경제 여건이 더욱 악화된 점을 반영한 조치다. 정치 불안에 따른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수출 여건도 악화하면서 성장률 하향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자동차까지 관세를 부과하면 1% 초반대까지 성장률이 떨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국내외 다수 기관에서 1%대 중후반의 성장률을 예상해 올해 국내 경기 둔화가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KDI는 올해 적어도 두세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KDI는 11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지난해 11월 대비 성장률 등 대부분 경제지표를 하향 조정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0%에서 1.6%로 0.4%포인트 인하했다. 부문별로 보면 소비는 경기 상황에 비해 높은 금리가 지속되고 정국 불안에 따른 심리 위축이 더해지면서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수출은 통상 환경 불확실성 확대로 종전 전망치보다 0.3%포인트 감소한 1.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고 경상수지 흑자 폭 전망치도 930억 달러에서 897억 달러로 내렸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현실화가 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는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우리나라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자동차까지 관세가 부과되고 통상 갈등이 격화한다면 성장률 전망치가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품목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때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도 떨어질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올해 경기 악화 국면에 진입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KDI는 통화·재정 정책을 통한 경기 보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고금리 기조가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잠재성장률이 1%대에 진입한 것으로 전망돼 기준금리를 올해 최소 2~3차례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미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을 했고 경제 상황에 비해서 여전히 고금리라고 보기 때문에 추가적인 인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중립금리를 대략 2%대 중반 정도로 보면 좋지 않은 경기 상황을 고려할 때 적어도 (올해) 두세 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에서도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이전만 해도 통화 완화 정책의 필요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서도 “국내 정치적 리스크에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트럼프 불확실성마저 너무 큰 상황이라서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재정 확대 정책에는 이자율 상승 등 구축 효과가 따르는 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통화정책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KDI는 재정정책과 관련해서 재정 조기 집행 필요성 등을 언급하면서도 법적 요건과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 필요성에는 선을 그었다. 추경은 시기 상조이며 금리 인하로 경기 악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KDI 측은 “추경은 경기 침체나 대량 실업이 발생했을 때 편성할 수 있다고 국가재정법에 명시돼 있는데 현 상황이 추경의 요건이 갖춰졌다고 명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재정적자가 많이 확대됐기 때문에 현 재정정책이 긴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비·투자 심리 위축에 관세 전쟁까지 겹쳐 경기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시너지를 내는 ‘폴리시 믹스’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경 편성을 통한 소비심리 자극이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와 시기적으로 맞물려야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정한 규모의 추경을 적기에 집행하는 것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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