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A 씨는 최근 돼지고기나 닭고기 같은 축산물 소비를 줄이고 계란과 같이 저렴한 품목들을 장바구니에 대신 담고 있다. A 씨는 28일 “계란 가격도 제법 올랐지만 냉장고에 항상 구비해둬야 한다는 생각에 구매한다”면서 “채소류 등 먹거리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고기에는 선뜻 손이 잘 안 나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서민 음식으로 통하는 육계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배경에는 움츠러든 소비심리가 있다. 올 겨울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어 육계 소비를 꺼릴 만한 수요 감소 요인이 없는데도 수개월째 닭고기 소비 감소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축산 업계는 육계 수요가 감소해 도축을 줄이고 있는데도 소비가 더 빨리 줄어 가격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며 “최근 이례적인 육계 소비 감소는 경기 둔화 외에는 설명할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닭보다 더 싼 계란 소비는 급증하고 있다. 실제 올해 1월부터 2월 26일까지 국내 한 대형마트의 계란 판매량은 전년 대비 15.9%나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육계 소비는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근 소비심리 둔화는 각종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2월 계엄 여파로 88.2까지 떨어진 뒤 석 달 연속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다. 이는 앞으로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특히 처분 가능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평균 소비 성향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69.0%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1%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2022년 2분기 이후 최저치다. 평균 소비 성향이 줄었다는 것은 버는 돈에 비해 쓰는 돈이 감소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지출 감소는 곧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경기 부진 속에서 물가마저 인상될 조짐(스태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경기가 위축되면 수요가 줄면서 물가가 낮아져야 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전쟁 등의 영향으로 환율이 다시 오름세를 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실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해 물가 관리 목표인 2% 선을 다시 한번 넘어섰다. 한은이 공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120.18(2020년 수준 100)로 지난해 12월(119.52)보다 0.6% 올랐다. 2023년 8월(0.8%)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7% 올라 18개월째 상승세를 보였다. 일단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진입하면 경기 순환상 회복 사이클을 다시 타기 어려워 침체의 강도가 더 강해진다.
이미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잠재성장률(2% 내외)보다 낮은 1.5%까지 끌어내렸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이마저도 1.4%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지표에 비해 훨씬 높다”면서 “성장률은 2%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물가는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어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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