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촉발된 관세 전쟁은 보호무역주의가 뉴노멀로 자리 잡는 신호탄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중소·벤처기업이 직면한 대외 환경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시기에는 정책 패러다임 역시 획기적인 전환이 불가피합니다. 쉽게 말해 ‘기업이 어려워졌으니 도와야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섬세하고 정교한 지원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조주현(56·사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은 7일 서울 동작구 중기연 서울 본원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중기연은 국내 유일의 중소·벤처기업 전문 싱크탱크다. 2015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법정 기관으로 재탄생했다. 조 원장은 지난해 9월 제9대 중기연 원장으로 취임한 후 이날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 원장은 1995년 38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인재정책관, 성장지원정책관, 중소기업스마트제조혁신기획단 단장, 소상공인정책실 실장 등을 거쳐 차관까지 역임한 대표적인 중소기업 정책 전문가다. 조 원장은 3년의 임기 동안 가장 공을 들일 업무 중 하나로 중·장기적 정책 설계를 위한 ‘대과제’ 연구 수행을 꼽았다. 기업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는 흐름에 발맞춰 긴 호흡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는 “중기연은 물론이고 외부의 연구진, 기업과 같은 정책 수요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각적인 접근법을 지향할 것”이라며 “단기적 대응이 필요한 이슈는 수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3개월) 수시 과제로 수행해 연구의 정책 활용도를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과제 수행에 남다른 의욕을 보이는 것은 과거와 같은 정부 지원책이 더 이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조 원장은 “중소기업 지원 규모는 앞으로도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지원하면 바로 성과가 나타나던 시대는 분명히 지났다. 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정교하고 섬세한 지원을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 담당자나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꺼내기 조심스러울 수 있지만 ‘기업이 어려워졌으니 도와야 한다’는 수준의 논의에서는 이제 벗어날 시점이 됐다”면서 “아울러 지금까지는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기업의 생애 주기를 고려해, 사업을 그만두거나 회생 등 재도전하려는 기업을 위한 정책 발굴까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규제 평가 부문에서 지난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중기연의 대표적 업무로는 중소기업 지원 사업 분석, 중소기업 규제영향평가, 중소기업특별지원지역 제도 운영, 중소기업 일자리 평가 등이 있다.
과거 차관 재임 시기에도 기존 규제자유특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글로벌혁신특구 설립을 주도하는 등 규제 철폐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기연은 지난해 신설 및 강화된 규제 총 1063건(618개 법령)을 분석해 불합리한 규제 39건을 발굴하고 이 중 21건이 수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약 9651개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약 30억 원의 규제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조 원장은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도 취임 이후 약 5개월 동안 총 359건을 찾아 예보했다.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 중 72건을 중점 검토해 5건에 대해선 별도 의견을 제출했다”고 소개했다.
올해는 이러한 규제영향평가 및 규제예보제 등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조 원장은 “환경·국토·식의약 등 중소기업 규제가 많은 분야를 중심으로 업계 및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는 현실성 있는 대안까지 마련할 것”이라며 “재계나 각종 협단체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신설되는 규제를 더욱 폭넓게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규 사업으로는 중소기업 일자리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을 목표로 ‘육아 친화 경영 지표’ 도입에 따른 평가 신규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 사업 선정 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업이 우대받는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의도다.
외부 학술 단체 등과 협업을 강화해 중기연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도 감추지 않았다. 중기연이 다른 국책연구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사회적 위상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수용한 행보다. 조 원장은 취임 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한국경제학회,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 ‘한국 경제 역동성 제고를 위한 중소벤처기업 정책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조 원장은 자타 공인 소상공인 전문가이기도 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7월 소상공인실장으로 취임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대책 마련을 진두지휘했다. 본인 스스로도 재임 기간 가장 의미 있었던 업무로 손실보전금 지급을 주저 없이 꼽을 정도다. 그는 “당시 부처 전체가 손실보전금 조기 지급을 위해 힘을 모았고, 결국 373만 소상공인에게 약 23조 원을 지급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패러다임이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는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조 원장은 “소상공인을 위한 현금성 지원이 때때로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이것이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냉정히 볼 때 정부 재원으로 모든 소상공인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업하는 분들을 위한 지원과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생계 지원은 구분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와 같이 일반 복지 명목으로 지원을 받고 소상공인 등록자라는 이유로 추가로 지원을 받는 구조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고환율 장기화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발맞춰 정부가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애정 어린 조언도 건넸다.
그는 “앞으로도 획기적인 환율 하락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의 환율이 뉴노멀이고, 이제는 이런 시대에 적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상당수 중소기업은 환 헤지보다는 대금 결제일을 조정하거나 단가 조정 등의 방식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환율 변동 피해 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하거나 환 헤지를 위한 변동 보험을 우대 지원하는 등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시에 정부가 글로벌 진출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면서 “수출로 성장해온 한국은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경제적 퇴보가 불가피하다. 동남아시아·인도·중남미·아프리카 등 수출 시장 다변화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기회의 요인도 적지 않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조 원장은 “디지털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 접근성을 제공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점점 더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진화하면서 중소기업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아울러 내수와 수출 모두 수요 시장을 다변화하면 성장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우리 연구원 역시 기업들이 이러한 흐름에 올라탈 수 있도록 공적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He is…
△1969년 대전 △대성고, 서울대 외교학 학사, 행정학 석사 △2007년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 과장 △2013년 대통령비서실 중소기업비서관실 행정관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정책실 국장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정책실 실장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2024년 서울시립대 자유융합대학 초빙교수 △2024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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