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이 다음 달 머리를 맞대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금융에 대한 끝장 토론에 나선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다시 들썩이는 상황에서 부동산 부문에 쏠린 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13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한은과 금융위·금감원은 다음 달 초 원탁회의 방식으로 가계부채 및 부동산 금융 관련 토론을 열기로 하고 일정 등 세부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기관별로 부동산 금융과 관련한 현황과 문제점 등을 발표한 후 각 기관의 수장들이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른바 F4(Finance4)라고 불리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의 구성원 가운데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빠진다.
경제 수장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금융을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가계부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해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가 발생할 때마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며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식이 반복되는 만큼 이 같은 성장 방식에 대한 논의도 예상된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들이 늘면서 과도한 차입을 했던 건설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비수도권 15곳의 그린벨트를 풀고, 악성 미분양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매입하는 등 건설 경기 부양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정부와 한은 내부에서는 건설 경기를 살려 성장률을 높이는 대신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소비가 침체되는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민생부터 살려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 총재는 지난해부터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올리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좋은 일인지 의문”이라며 “금융통화위원들은 이런 고리를 한 번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건설 경기 부양을 경계하는 발언을 지속해왔다. 앞서 서울시가 잠실·삼성·대치·청담 등 토지거래제한구역을 해제하자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는 신고가가 잇따르면서 호가가 상승하고,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지역에서는 높은 금액에 계약이 이뤄지는 추격 매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번 회의도 이 같은 문제 의식에 경제 수장들이 공감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등 정치적 일정이 불확실한 가운데 이 원장의 6월 임기 종료 등을 고려했을 때 F4가 관련 논의를 진행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정부와 한은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으나 현 정부에서 F4 회의를 정례화함으로써 경제·금융 현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적극적으로 정책 공조를 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은 F4 회의를 통해 부처 간 공조를 강화한 결과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가계부채 급증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급격히 늘었으나 현 정부 들어 F4 회의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결과라고 여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하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2년 6월 말 97.9%에서 지난해 9월 말 90.7%로 점차 안정되는 추세다.
다만 가계부채 비율이 조사 대상 44개국 가운데 5위 수준으로 여전히 높은 만큼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크다는 평가다. 서울시의 토허제 규제 완화 이후 부동산 거래가 증가하면서 올 1월 9000억 원 감소했던 금융권 가계대출은 2월에 4조 3000억 원 증가 전환했다. 정부는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이내로 일관되게 관리하겠다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는 3.8% 이내를 제시한 만큼 은행권 가계대출의 월 증가액을 1조 9000억 원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가계부채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관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