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국내 상장사 5곳 중 3곳이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본격화로 기업 성장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를 제시한 국내 상장사 98곳 가운데 62곳(63.26%)의 2025년 2분기 영업이익이 3개월 전 대비 감소했다. 이달 24일 기준 코스피 상장사 82곳 중 51개, 코스닥 16개 기업 가운데 11곳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하락했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하락을 주도하면서 당분간은 국내 증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 3459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20일(8조 8325억 원) 전망 대비 28.2% 낮아진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 10조 4438억 원과 비교하면 40% 감소가 예상된다. 그나마 모건스탠리가 최근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상향했지만 상반기까지는 강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외에도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SK하이닉스(-1.8%), LG에너지솔루션( -45.1%), 현대차(-6.2%)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국내 상장사들은 지난해 4분기 절반 이상이 ‘어닝쇼크(예상보다 부진한 실적)’를 냈다. 2차전지 업종은 올해 1분기 실적이 전 분기 대비 더 악화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관세·탄핵 등 국내외 불확실성 변수들이 제거돼도 근본적인 기업 경쟁력 개선 없이는 국내 증시 밸류에이션 정상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국내 양질의 일자리는 감소하는 반면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늘어나면서 경제 전체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중국에 뒤처지기 시작한 점도 직격탄이 됐다”고 말했다.
상장사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낮아진 대표적인 요인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꼽힌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여파로 나 홀로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도 올 3분기까지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며 상장사들은 수차례 경영계획을 수정하는 분위기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98개 국내 상장사의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63%(62개)가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낮췄다.
우선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지속되는 고환율이 기업들에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영업이익 전망을 쪼그라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산업구조상 환율이 오르면 국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강화돼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반도체의 경우 올 2분기부터 메모리 가격 반등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관련 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 3459억 원으로 석 달 사이 28.2%가량 줄어들었다. 올 2분기 메모리 가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트럼프의 통상 정책 불확실성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석 달 새 영업이익 전망치를 -1.8%가량(7조 6413억 원) 낮췄다.
아울러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 생산이 증가한 만큼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 내 생산이 아니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정책에 따라 높아진 환율은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한다. 시기총액 3위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전망치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와 관세 리스크로 석 달 새 영업이익 전망치가 45.1%(2976억 원)나 하락했다. 올해 배터리 업종 성장률은 지난해 성장률 대비 밑돌 것으로 전망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방 수요가 위축된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대(對)미국 자동차 수출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만큼 향후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영업이익 감소가 자동차 전후방 산업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실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 30분 기준)은 전날보다 2.9원 내린 1466.3원을 나타냈다. 7거래일 만에 소폭 하락했으나 전날에는 장중 1470원을 육박하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12월 30일(1472.5원) 이후 최대치다. 반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4.307로 전날보다 0.02% 내리며 달러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경기 회복 기대감, 중국의 부양책 효과 등으로 글로벌 자금이 미국을 빠져나간 영향이다.
그나마 관세 무풍지대 속 업황 효과로 영업이익이 상향 조정된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49.3%), 삼성바이오로직스(9.8%), 삼양식품(5%) 등이다. 소비재 종목의 경우 글로벌 불확실성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불안정성이 장기화할 경우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져도 환율은 앞으로 석 달간 1450원 선을 유지할 것”이라며 “탄핵이 기각되거나 4월 중순으로 연기되면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클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특히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경우 국내 주식시장으로까지 여파가 크다고 지적한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2분기 실적이 예상을 밑돌 경우 주식 시장 상방이 제한될 것”이라며 “실적 부진이 장기화 될 경우 국내 주식 시장 전반이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낮아진 기업 경쟁력이 국내 증시의 외국인 이탈을 초래해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2분기 실적 예상치가 관세 리스크를 선반영한 만큼 일시적 둔화 예상치라는 분석도 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트럼프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되기 이전인 1분기에 선주문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2분기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이라며 “3분기 이후부터 회복세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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