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한국을 포함한 70여개국에 대해 90일간 상호관세 적용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104%에서 21% 포인트 더 높인다. 이번 조치는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중국을 압박하면서 협상에 나선 국가들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관세 부담을 완화해주면서 맞춤형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해 추가로 맞대응 조치를 발표한 중국에 대해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희망컨대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중국이 미국과 다른 나라를 갈취하던 날들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용납되지도 않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뺀 75개 이상 국가에 대해선 “미국과 협상에 나섰으며 보복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90일간 (국가별 상호관세를) 유예 및 상당히 낮춘, 10%의 상호관세를 승인했다. 이 또한 즉각 시행된다"라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관세 및 비관세 장벽 등을 이유로 미국의 모든 무역상대국에 10% 이상의 상호관세 시행 방침을 밝혔다.이에 따라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 관세가 5일부터 시행됐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이른바 '최악 침해국'으로 분류한 57개 무역파트너(한국·일본·중국 등 56개국+27개 회원국 가진 유럽연합)에는 9일 0시1분부터 국가별 상호관세가 별도로 부과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지 13시간여만에 중국을 제외하고 다른 국가에 대해선 국가별 상호관세 유예 조치를 전격적으로 내렸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재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인상될 것이며 이는 중국이 경솔하게(imprudently) 보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면서 "누구든 미국을 때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더 세게 맞받아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대해 "우리는 맞춤형 협상을 계속할 것이며 그 기간에 90일간의 (국가별 상호관세) 유예가 있을 것"이라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관세는 보편적인 10%로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도 90일간은 기존 25%에서 10%로 낮아지게 됐다. 다만 철강, 자동차 등에 대한 25%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오는 6월3일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한국 입장에선 전열을 정비한 채 대미 관세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하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체제하에서 한미간 협상을 사실상 시작한 상황이어서 미국이 속전속결로 한국의 '양보'를 받아 내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간 간 협상은 한국이 원하는 속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뤄진 세계국채지수 편입…장기물 금리도 올라 '살얼음판'
11월서 내년 4월로 5개월 연기
560억弗 '1급수' 자금유입 지연
관세 전쟁 속 추경 물량도 부담
글로벌 투자자 신뢰 저하 우려
기재부 "국내 정치 영향은 0%"
11월서 내년 4월로 5개월 연기
560억弗 '1급수' 자금유입 지연
관세 전쟁 속 추경 물량도 부담
글로벌 투자자 신뢰 저하 우려
기재부 "국내 정치 영향은 0%"
미중 간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내년 4월로 늦춰지면서 국내 국채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최대 560억 달러(82조 원)의 선진국 자금 유입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내년으로 미뤄진 데다 하반기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실망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전날 오후 3시 30분 기준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5.4bp(1bp=0.01%포인트) 오른 2.733%를 기록했다. 20년물 금리는 4.7bp 상승한 2.645%, 30년물 금리는 6.1bp 오른 2.540%를 나타냈다. 국채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하면 국채 가격은 떨어진다. 장기물 국채금리는 이달 들어 하락세를 이어오다 전날 일제히 반등한 이후 이틀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이날 국채시장에서 10년 이상 장기물이 약세를 보인 데는 한국 국채의 WGBI 편입 지연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세계 3대 채권지수인 WGBI의 운영사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이날 새벽 한국의 WGBI 편입 시점을 올해 11월에서 내년 4월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편입 완료 시기는 내년 11월로 동일하다. 내년 4월부터 편입이 시작되지만 분기가 아닌 매달 편입 비중을 높여 계획된 시점에 편입을 끝내겠다는 게 FTSE 러셀 측의 설명이다.
과거 WGBI에 편입된 국가 중에 지수 편입 시작 시점이 변경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경우 최종 편입 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늘었을 뿐 지수 편입 시작 시점이 바뀌지는 않았다. FTSE 러셀 측은 한국 정부에 “편입 개시 시점 조정은 투자자들에게 투자 실행을 위한 내부 절차를 마무리하고 테스트 거래를 위한 준비 시간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WGBI 편입 효과 극대화와 제도 안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지수 편입 시점이 늦춰지면서 당초 기대했던 △선진국 자금 유입 △국채 조달 비용 절감 △달러화 유입에 따른 고환율 완화 효과 등도 모두 뒤로 밀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WGBI 편입으로 국내 국채시장에 최대 560억 달러(82조 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WGBI 편입 자금은 1급수”라며 “가장 안전한 곳만 투자하고, 투자하면 잘 나가지 않는 돈이라 외환시장의 저변을 확대해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편입 연기로 해외 자금의 국내 유입 시점이 늦어지면서 한국 국채금리가 지속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197조 6000억 원 한도의 국채 발행을 앞두고 있다.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발행 한도도 20조 원으로 잡혀 있다. 조기 대선을 전후로 추경까지 편성할 경우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가뜩이나 미중 관세전쟁 여파로 미 국채와 위안화가 동시에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시장은 추가로 쏟아질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 국채를 투매할 것이라는 우려에 한국 국채시장 전반에 금리 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며 “11월 전후로 기대됐던 해외투자가의 매수 물량까지 줄어 들면 장기 국채금리도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WGBI 편입 지연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국채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경우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FTSE 러셀이 불과 반 년 전에 발표한 내용을 수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과 재정 운영 방향 등을 지켜보면서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조치를 편입 실무 과정에서 나타난 기술적인 현상으로 평가하면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 정치나 경제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0%라고 생각한다”며 “지수 편입 및 운영과 관련해 투자자에게 일종의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