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에 이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문제가 미국 금융자산시장의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시도를 거듭하면서 미국 증시는 급락했고 달러 가치는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금융시장의 보루인 연준의 독립성 침해될 경우 침체나 인플레이션, 국채 시장 혼란 등 위기 발생 시 이를 수습하기 어려워진다는 불안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21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971.82포인트(-2.48%) 하락한 3만8170.41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24.50포인트(-2.36%) 내린 5158.2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415.55포인트(-2.55%) 떨어진 1만5870.90에 장을 마감했다.
매그니피센트7(미국 주요 7개 기술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약세를 보였다. 알파벳은 2.28% 하락했고 엔비디아는 4.51% 급락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3.11, 2.35% 하락했다. 테슬라는 5.96% 떨어져 낙폭이 컸다. 호실적을 발표한 넷플릭스만이 1.57%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 다시 파월에 “루저, 당장 금리 낮춰라”
이날 증시 하락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한 영향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파월 의장을 겨냥해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이자, 중대 실패자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많은 이들이 선제적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과 바이든의 계란 가격을 포함해 식료품 가격이 상당히 내려갔고, 대부분의 다른 품목들 가격도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은 안정됐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추후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이를 행정부 정책의 결과가 아닌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탓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에는 파월 의장에 대해 “내가 그를 내보내고 싶다면 그는 정말 빨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와 관련 지난 18일 트럼프 팀이 파월 의장 해고 여부를 실제로 검토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시도가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불안해 하고 있다. 만약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라 해임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 개편이 추진될 경우 이는 글로벌 금융 시장이 정치 논리에 휩쓸릴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페퍼스톤의 선임 리서치 전략가인 마이클 브라운은 “파월 의장이 해임된다면 초기 반응은 금융 시장의 엄청난 변동성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미국 자산 매각 행진일 것”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이 명백히 위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러화 약세와 미국이 패권에서 이탈될 가능성도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증시와 함께 미국채와 달러까지 동시에 매도되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현상은 다시 강해졌다. CNBC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이날 장중 97.92까지 떨어졌고 이는 2022년 3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 10년물과 30년물 국채 금리는 각각 8.7bp(1bp=0.01%포인트), 10.5bp 상승한 4.417%, 4.908%에 거래됐다. 국채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장기 투자 위험이 적은 2년물 국채 금리 만이 3.2bp 하락했다. 그레이 밸류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스티븐 그레이는 “파월 의장이 해임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시장에 큰 불안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이날 미국 자산의 하락은 미국 정책의 불안정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를 반영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국적 없는 안전 자산인 금값은 상승했다. 이날 금 선물은 3.3% 오른 3437달러 선에 거래되며 23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진척 없는 관세 협상…모건 스탠리 “침체 온다면 아직 저점 못 본 것”
그 사이 미국의 관세 협상도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피해를 끼치는 나라가 있다면 보복할 것이라며 실력 행사의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1일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중국은 어떤 국가가 중국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미국과의) 거래를 달성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만약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중국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대등하게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중국은 자기 권익을 지킬 결심과 능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세와 연준 독립성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겹치며 월가 전문가들은 증시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점쳤다. 모건스탠리의 전략가인 마이클 윌슨은 기업들이 팬데믹 초기보다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면 시장은 2주전에 저점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지 않다면 S&P500 당시 저점보다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윌슨 전략가는 경기 침체를 확인하거나 반박하게 되는 시점까지 S&P500은 5000~5500 수준을 오갈 것으로 봤다.
기업 성장세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의 1분기 S&P500의 주당순이익 성장률 전망치는 연초 11.4%에서 현재 6.9%로 낮아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자산시장의 리더십에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트리배리에이트리서치의 창립자인 애덤 파커는 “(미국 증시에 대한 비관론은) 단기 가격 변동이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이것이 장기추세의 시작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국 시장의 부진한 실적은 1년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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